바쁜 세상이기도 하고, 개인주의이기도 한 세상살이를 하느라, 우리들은 점점 소통의 시대가 아닌 대화 단절의 시대, 타인과 부딪히기 싫어하는 폐쇄적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공통의 이익부분에만 협력하는 그야말로 철저한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은 명절이라는 이름아래 멀리 떨어진 가족들과 재회하며 못다한 대화도 나누고 정도 나눴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필자 자신 또한 이러저러한 이유로 고향에 계신 가족간의 회합마저 핑계거리를 만들고, 이유를 대는 삶이 되고 말았다.
며칠전 서울 신정동 묻지마 살인기사를 보면서,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가족들의 화목한 웃음소리에 화가 나 살해를 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는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사건이 있었고, 중국에서는 대학생을 이유없이 11층에서 집어 던지고, 열차에서 잠자던 승객을 이유 없이 찌르고…. 이렇듯 우리는 극도로 무섭고도 공포스런 사회에 살아 가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경제적 차이에서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생기는 사건들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아마도 지금으로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저 각자가 더 주의하고 스스로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회는 더욱더 고독한 사회로 흘러 갈 것이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립된 생을 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사건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마치 데자뷰의 현상처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유사한 뉴스 유사한 사건을 지켜보며 자기 단속에 더 힘을 쏟아 부을 것이다. 결국 악인은 항상 따로 있고, 내 스스로는 그 곁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할 것이니, 무슨 그리 많은 대화가 필요하겠는가? 내 머리 속에서 내 컴퓨터 속에서 필요한 부분을 보충하고 만족하면 그만인 것을.
밭에다가 씨앗을 뿌리지 않았다고 나와 관계없는 채소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채소들이 내 식탁에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각자의 성격이려니 생각하며 좀더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통해 살아가자. 그러다 보면 좀더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생길 것이고, 좀더 이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 파장이 점점 퍼져 악인에게도 조금이나마 선의 영향을 끼치게 될 수 있고, 범죄의 확률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지? 필자만의 공상인가?
시간은 덧없이 흘러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하여, 우리 자손들은, 이웃들은 나아가 이세상 모든 인류가 행복한 삶을 살다 땅속에 묻히길 염원한다. 다가오는 추석명절에는 올해도 얼마 안남았구나 하는 위기 의식보다는 우선 가족간 소통을 통하여 힘을 합쳐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 되시길 독자여러분께 기원하나이다.
▷조용한 상인(trnt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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