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요즘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지방 출신의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진징즈뱌오(進京指標)’다. 베이징 후커우(戶口·호적)로 외지인에게 베이징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증서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를 얻지 못하면 ‘상경(上京)의 꿈’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야 한다. 이 증서가 없이 베이징에 남으려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직장을 구하는 데 불리하다. 회사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베이징 출신을 선호한다. 자기 집이 있어 안정적이라는 편견이 있는 데다 유사시 ‘관시(關係)’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골 호적이면 집을 사더라도 10만∼20만 위안(약 1200만∼2400만 원)이 더 든다. 베이징 시가 싼값에 분양하는 주택인 경제적용방(經濟適用房)은 신청 자격도 안 준다.
더 서러운 건 자녀를 낳아도 외지인으로 분류해 버려 5만 위안 이상의 찬조금을 내야 베이징에서 취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손에 넣기는 쉽지 않다. 국영기업이나 국가가 요즘 장려하는 정보기술(IT) 관련 회사에 들어가야 겨우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진징즈뱌오는 2만∼3만 위안을 호가한다. 대졸 회사원이 1년 남짓 모아야 하는 거액이다. 하지만 졸업반 학생들은 이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신입사원들에게 베이징 호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국영기업이나 IT 업체는 궁박한 학생들의 처지를 이용해 장사를 한다. 시 정부에 채용 인력을 부풀려 보고해 베이징 호적을 넉넉히 확보한 뒤 남는 호적을 대학생들에게 내다 판다.
그래도 호적 제도를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디 가면 싸게 살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호적’이라는 굴레는 누구도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고 체념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에서 평범한 회사원이 도시에서 집을 사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한국의 국민주택 정도인 100m² 규모의 아파트 값이 70만∼80만 위안(약 8400만∼9600만 원) 정도 된다. 대졸자의 월급이 대개 2000∼3000위안이니 20∼30년간 안 먹고 안 입으며 저축해야 겨우 살 수 있다. 은행 대출로 산다면 연 5.85%의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20∼30년간의 이자는 원금에 육박한다.
일반 회사원은 아무리 열심히 저축해도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을 따라잡기 어렵다. 지난해 베이징의 아파트 가격은 m²당 7392위안으로 전년보다 23.2% 올랐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베이징에서 미분양률이 공개됐지만 아파트 가격은 떨어질 줄 모른다. 극소수를 제외한 도시민 전체가 ‘팡누(房奴·집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한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농촌에서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도시로 나온 농민공(農民工)이 집을 장만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한 달 월급은 800위안 안팎이다.
중국의 빈부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상위 20% 고소득 계층의 수입은 하위 20% 저소득 계층의 21.7배에 이른다. 도농 간 소득 격차도 10배를 넘는다.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사회주의 중국’이 무색할 정도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는 노동자 농민의 연맹을 기초로 한 인민민주전제정치를 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중국 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나라를 영도하기는커녕 어디를 둘러봐도 노동자, 농민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매일 아침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국기게양식 때 울려 퍼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는 이렇게 시작된다. “일어나라, 노예로 살아가길 원치 않는 민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