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 자락에 접어 들 때면 꼭 거쳐야만 하는 의식이 하나 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 것. 올해는 추석이 지난 지가 벌써 한 달 반이 지났음에도, 연이은 봄같은 따스한 날씨에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깜박 잊고 있다가 오늘에야 드디어 병원에 들러 독감예방주사를 맞았다. 평시엔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라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는데, 마침 중간고사가 끝나고 하루 쉬는 틈을 타, 이웃에 사는 엄마의 지혜로움에 힘입어 가까운 병원에서 접종할 좋은 기회가 생긴 것. 항체가 몸에 들어온 탓인지, 지금 조금은 주사 맞은 팔이 부어서 단단한 듯하고, 머리도 조금은 띵~하고, 또 약간은 졸립기도 하지만, 올 겨울을 무사히, 독감과 지독히 싸우지 않고서 보낼 수 있다는 안도감에 마음 한구석이 가볍다. 또 한번의 연례행사를 무사히 치른 듯한 안도감에.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이던 작년, 학교에서 예방접종을 맞았었다. 그러나, 1주일쯤 지났을 때, 아이는 초기 감기 증세를 보였다. 학교에 가도 아파서 고생만할 것 같아, 차리리 초기에 병원에 데려가는데 좋겠다 싶어 가까운 병원에 갔었다. 열도 없었고, 편도선도 부어있지 않았었고, 누가 봐도 그냥 그야말로 일반적인 감기 초기 증세였었다. 그런데, 아이가 점심때쯤부터, 갑자기 고열이 나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식욕도 전혀 없었고, 자는 모습을 지켜보니, 폐가 금방이라도 내 눈 앞에서 밖으로 튀어나올 듯 불룩불룩거리고 있었다. 숨쉬는게 정말 힘겨워 보였다. 덜컥 겁이 났다. 당시 한참 방송에서 신종플루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던 터라 뭔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설마, 내 아이에게, 설마 신종플루?’
신종플루 진단을 확증해준다는 병원을 찾아가니, 폐가 이상하다며,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폐 X-ray부터 찍자고 했다. 아이가 너무나 힘들어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아니, 병원에 있다가 아이를 더 힘들게 하겠다 싶어 서둘러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사실은 신종플루 확증을 받으면 이 중국 병원에선 정부의 지시에 따라, 아이만 따로 격리 시킬까봐 두려워서 얼른 집으로 데려왔다. 눈으로 보니, 분명, 신종플루인 것 같은데, 그러나 끝까지 의사의 입으로 내 귀에 와 닿을 때 까진 인정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냥 놔둘 수도 없었다. 더 심각해지기 전에 또 다른 외국 병원을 찾았고, 거기서 신종플루 확정을 받았다. 의사는 5일분의 약을 반드시 먹어야 하고 그러면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결국, 우리 작은 아인, 신종플루와 더불어 폐렴까지 겹쳐서 어쨌든 꼬박 5일을 앓았다. 의사인 삼촌 말에 따르면, 사실은 신종플루는 제때에 약만 먹으면 되지만, 폐렴이 더 심각하다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아이가 위대해 보였다. 아프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정신도 못차리고 있다가, 고열이 사라지자 그야말로 내겐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모습으로 벌떡 일어나던 그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여기, 상해에서 작년 겨울을 한집에서 함께 지냈던 나와 큰아이. 우리 둘은 웃으면서 ‘우리도 둘 다 틀림없이 신종플루에 걸렸었다. 이젠 우린 아마 신종플루는 안걸릴거다’고 우스갯소리를 해본다.
오늘, 예방접종을 위안삼아, 작년의 날들을 생각해보니, 정말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 저렇게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할 뿐. 직접 물어 보지 못하고서, 눈치껏, 온갖 수저며 그릇들을 뜨거운 물에 소독하던 아줌마, 신종플루일지도 모른다는 말에도 말없이 운전해 주던 회사 직원, 걱정 어린 마음으로 우리 집을 찾아주었던 언니, 새삼 고마움이 느껴진다. 오늘의 이 예방주사는 다가올 추운 겨울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의 월동 준비였다.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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