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앓았다. 기침이 나는 것도, 열이 나는 것도 아닌데, 온몸이 으슬으슬 추운 것이 머리가 띵한 채로 골골 거리며 일주일을 앓았다. 몸살감기로 셀프 조제하여 약 몇 알씩을 입안에 털어 넣고 움직일만해지니 동동거리며 준비하는 것이 곰탕. 이른 저녁을 차려 먹이고는 소뼈와 소꼬리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끓일만한 커다란 솥을 준비하고 광천수도 넉넉하게 붓고 불을 지피고 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직장생활을 하셨던 엄마는 우리 5남매를 위해 커다란 전기밥솥에 어마어마한 양의 밥을 해두셨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면 보온밥통의 밥 색깔이 변해 있곤 했다. 그래도 동생들과 앉아 서울버터 한 숟가락에 간장 한 숟가락과 잘 익은 김치를 반찬으로 먹던 밥은 얼마나 맛있던지…. 크면서 엄마대신 도시락도 싸곤 했는데, 학교에서 엄마 냄새나는 반찬을 도시락으로 먹으며, ‘집에 빨리 가야지, 동생들이랑 놀아야지, 엄마 오기 전에 숙제 다 해야지’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준비를 하곤 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한참을 기다려야 돌아오시는 엄마는 내게 늘 그리움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목에 건 열쇠로 아파트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가 아침에 차려둔 점심을 먹으며 숙제를 하고, 엄마가 보고 싶어 설거지도 하고, 엄마가 보고 싶어 벗어둔 옷도 세탁기에 넣어두며 기다리던 엄마. 엄마는 철철마다 계절음식을 잊지 않고 해주셨는데 겨울철에 자주 먹었던 음식이 곰탕이었다. 주말이면 일주일동안 못다 부은 자식사랑을 몽땅 집어넣어 곰탕을 끓여서 주시곤 했는데,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이면 따뜻한 공기를 따라 다니던 곰탕냄새. 어린 시절 곰탕 한 그릇은 엄마가 세상의 전부일 때, 엄마의 부재를 보상 받았던 어린 영혼의 보양식이었던 셈.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뽀얗게 우러난 곰탕이 마음에 든다. 중국생활을 시작했던 7년 전 샤먼(厦门)에서 처음으로 곰탕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소뼈를 사서는 밤새 고아도 국물이 말갛기만 했던 이유는 샤먼표 소뼈가 물소 뼈여서라나. 소꼬리도 같이 섞어서 끓여야 뽀얀 국물이 잘 나온다고 해서 재도전해서 만들었던 곰탕 맛은 지금 생각해도 어딘가 어설프다. 중성지방이 몸에 안 좋다고 한참 시끌시끌했던 해에 잠시 갈비탕으로 돌아섰던 거 말고는 매년 겨울이면 끓이는 우리 집 곰탕. 추운 겨울 아침에 밥 말아 뜨겁게 한 그릇 먹고 나면 이만큼 든든한 게 없지 싶다.
일본영화 ‘우동’에서 모두에게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던 마지막 대사.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입니까?”
지나간 시간의 그리움도 한 사발 뜨겁게 마시고 새해를 시작해 본다. 누군가 나만을 위해 끓여주는 새로운 나의 소울푸드를 찾아.
▷Betty(blog.naver.com/fish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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