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를 추모하며-
낮기온 영하 22도의 하얼빈공항2011년 새롭게 시작된다고 신문, 방송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달력의 첫 장을 넘긴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스레 더욱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이번 지면에는 지금까지 금융•경제적인 부분에서 조금 벗어나 얼마 전 하얼빈(哈尔滨)을 다녀온 감상문을 써보고자 한다. 간다 간다 예전부터 생각만하다가 지난 출장길 끝에 마침 주말이 걸려있어서 내친 김에 별반 사전 준비도 없이 하얼빈 길에 올랐다. 막연히 신문, 방송으로만 듣던 유명한 빙등제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심산이었다. 추위를 워낙 많이 타는 체질에도 불구하고 영하 30도 가까이 되는 날씨가 좀 두렵기는 했지만 작정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베이징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서 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래로 보이는 중국 동북방의 산천은 온전히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중국대륙의 넓음을 실감하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비행기 기내에서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도착 지역의 현지 기온을 알려주는데 정오 무렵인데도 영하 22도란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처음 온 하얼빈공항은 지금까지 중국내에서 출장을 다니며 중국의 발전을 실감하게 했던 다른 여느 도시들과는 다르게 10년 정도는 뒤쳐진 조금은 옛스런 모습이다. 하얼빈공항에 도착해 방한복을 껴입으니 실내라서 그런지 땀이 나기 시작한다. 공항을 나서니 더운데 있다가 나와서 그런지 처음에는 시원한 듯하다가 코끝이 찡한 찬 바람이 휙 폐부까지 들어오는 느낌이다.
하얼빈에서 떠올리는 ‘안중근의사’즉흥적으로 결정해서 특별히 고민하지 않았던 여정인지라 일단 하얼빈시내로 무작정 들어가기로 하고 공항버스에 올랐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안중근의사’였다. 역사지식과 관심이 많이 미흡한 나에게 스스로 생각해도 참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먼저 안중근의사 관련 장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동하면서 전화로 몇 곳에 문의하니 안중근의사께서 의거하신 하얼빈역 현장인 1번 플랫폼 시계탑 밑에 의거장소를 기념하는 표시 하나가 있고, 조선문화예술원 안에 안중근 기념관이 있다고 한다.
일단 먼저 기념관을 찾아가기로 하고, 시내에 도착해서 차에 내리니 상하이와는 사뭇 다른 차가움이 볼이 얼어붙은 느낌만큼이나 차갑게 다가온다. 택시 잡기도 만만치 않고 내린 곳으로부터 거리상으로도 가까운 것 같아 물어 물어 찾아가기를 1시간 가까이 엄동설한 속을 헤맨 끝에 기념관을 찾았다. 찾는 중에 하도 헤매어서 포기할까도 하다가 왠지 모를 오기와 호기심으로 찾아가니 폐관시간을 30분 남기고 간신히 도착하였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2층에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시간대별로 행적별로 정리되어 붙어 있는 관련 사진들과 글을 보다가 이내 생각보다 더욱 깊이 안중근의사에게 빠져들어갔다.
안중근 기념관에서 느낀 뜨거운 무엇어느 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글을 읽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내 눈에 눈물 방울이 맺혔다. 의거를 하시기로 결심하고 하얼빈에 처음 오셔서 아내에게 보내는 서간문으로 기억되는데 ‘당신 생각에 눈이 뜷어질 것 같으오’라는 표현을 보고서 가슴속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흘러내렸다. 가족들과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생각했던 그 맑은 정신과 시대적 사명을 실천하신 모습이 내 한 몸뚱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내 자신이 비춰지며 어디 몸을 숨길 때가 없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상하이에서도 혼자 몇번 간 적이 있는 홍커우(虹口)공원내의 윤봉길의사 의거 기념장소인 매헌(梅轩)에서 보았던 윤봉길의사 글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과 겹쳐지며 새삼 시대정신으로 살아가신 선조들의 가슴 뜨거운 조국사랑을 느껴졌다
그래도 하얼빈까지 왔으니 그 유명한 빙등제를 보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섰다. 강 건너편에 빙등제로 유명한‘冰雪大世界(빙설대세계)’라는 곳으로 찾아가 들어가려고 하니 주말에는 입장료가 330위엔이란다. (평일에는 280위엔) 중국 어디나 관광지의 입장료가 비싼 것에 놀라지만 새삼 잠시 구경만 하고 갈 건데 이 돈을 주고 봐야 하나 망설이다가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싼 입장료를 끊고 들어갔다. 송화강의 두꺼운 얼음으로 만든 각종 건축물형상과 형형색색 조명이 아름답게도 구성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와야지’싶다가도 북방의 추운 날씨 속에서, 아이들에게 구경보다는 빨리 숙소로 가자고 보챔을 당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얼빈을 떠나오면서 자꾸만 머릿속에 자리잡은 안중근의사에 대한 생각 속에서 중국에서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나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일본 헌병에게 가혹한 고문을 당했지만 사형전날까지 애국충정에 더욱 당당했다. 사형 이틀 앞두고 여순감옥에서 마주보고 대화하는 사람은 프랑스 신부, 두 동생이 형님의 유언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