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참 많이 내리는 여름이다. 6월 내내 비를 끼고 살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하루 종일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노라면 강물처럼 고여 있는 운동장은 아이들의 재잘거림, 발길질을 기다리다 지쳐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비와 모든 자연물을 다 좋아하여 비가 그친 뒤 하나 둘 떨어지는 빗방울을, 햇살에 비쳐 반짝이는 빗방울을 좋아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을 참 싫어한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근질근질한 몸을 점심시간이나 체육시간을 통해서 뛰어다니고 소리도 지르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비로 인해서 실내에 꽁꽁 묶여 있어야 하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그래서 비오는 날은 더욱 시끄럽고 산만하고 말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해결책으로 초임 시절부터 비가 오면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불을 끄고, 커튼을 치고 공포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무서운 눈초리로 아이들을 응시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아싸!!’ 하면서 나의 다음 행동을 예견한다.
비가 아침부터 오면 아침부터 이야기 해달라고 조른다. 이야기를 하려고 앉으면 정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빗소리만 후두둑 들린다.
“꼭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었어. 그날도 영희는 도서관에 앉아서 항상 그랬던 것처럼 공부를 하고 있었지. 영희의 공부하는 자세는 매일 똑같아. 두 팔을 턱에 괸 모습이었지. 그리고 집에 가는 시간도 똑같아. 공부를 하는 순서도 항상 같았지. ~~~”
그러면서 쓰윽 둘러보는 교실은 그야말로 조~~~~용. 그리고 집중하는 모습이란.
‘녀석들 공부시간에도 좀 저래보지.’
아이들은 눈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집중을 하고 있다. 귀엽다. 목소리를 크게 작게, 가끔씩 한 번씩 책상도 치고 그러면 ‘악!!!’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6월 대략 2, 3주를 쉬지도 않고 너무도 자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알고 있는 웬만한 귀신이야기가 거의 바닥이 났다.
엘리베이터 귀신, 팔꿈치 귀신, 물구나무 귀신, 물에 빠진 총각 귀신, 내 발 내 놓아라 귀신, …….
웬만한 귀신 다 등장하고 납량특집으로 하는 드라마를 인용하여 꺼내보고 그래도 아이들의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 교실에서는 비가 와서 겪는 불편함을 잊고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들의 장마철이 지나갔다. 이제 우리 앞에는 무더운 상하이의 여름이 버티고 있다.
우리가 배우는 2학년 교과서 즐거운 생활에서 다루고 있는 여름은 상당히 역동적이다. 그래서 젊음과 열정이 느껴진다. 참고용 곡인 비발디의 ‘여름’이 그렇고, 베토벤의 ‘폭풍’,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등이 그렇다.
격한 비바람, 세찬 빗줄기, 그리고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서 곡식들이 더욱 알토란해지듯, 우리 아이들이 알차게 영글어간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단단해져 있음을 느낀다. 이 여름 또 그렇게 보내고 오겠지? 마지막으로 송남선 시인이 쓴 ‘여름 냇가’의 한 자락을 써본다.
꼴 먹이러/소 끌고 나간 냇가/모래밭엔/여름이 햇살과/뒹굴고 있었다.
-중간 생략-
그늘 밑 소 한 마리/끔벅이며/더위를 되삭임할 때면
한 웅큼씩/햇살을 주워 담는/사과나무/주렁주렁/여름이 열린다.
▷백경숙(상해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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