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장기간 낯선 나라에 머물게 되면 음식으로 고생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여행객이라면 그러한 상황도 즐길 만 하지만 현지에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출장자(?)의 신분이라면 먹는 문제만 해결돼도 절반은 성공한 셈.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참가를 위해 10여일간 이 곳에 머문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 출장•여행자들에게도 중요한 음식이 운동선수에게는 오죽할까. 게다가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박 선수의 컨디션을 좌우할 수 있는 식사문제, 박태환 선수의 상하이 입성부터 줄곧 그의 식단에 집중했던 분이 있다. 청학골 한식조리 담당 고희숙 실장(55). 그녀는 모든 관심이 수영장에서의 기록과 경쟁에만 집중되는 동안 박 선수의 어머니 심정으로 손수 모든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했다.
“박태환 선수측이 청학골 음식을 택했다고 소식에 자부심도 있었지만 사실 부담이 컸다. 운동선수에게 음식은 경기 내용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부담감으로 시작한 고희숙 실장은 청학골 직원들과 함께 식단을 짜고, 재료를 선택하고, 직접 조리해서 박태환 선수에게 전달하기까지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게 됐다는 것. 주방장에게 맛과 정성은 당연했고, 무엇보다도 여름철에는 위생이 최우선이었으므로 그 부분에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됐다고 한다.
“박 선수 쪽에서 특별한 주문은 없었다. 육류 금지와 생수 사용, 그리고 박 선수가 좋아하는 ‘스팸계란말이’를 매 끼 올려달라는 정도였다.”
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밥, 국, 후식까지 총 12가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수산시장에서 직접 생물을 골랐으며, 된장은 연길의 집된장을 직접 공수해왔다. 육수 역시 새우, 멸치, 꽃게 등 천연재료로만 만들었으며, 쌀은 동북쌀(흑룡강)을 사용했다.
10여일간 점심과 저녁 두 끼를 준비하는 동안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박 선수가 예선 7위로 올라가고 죽음의 1번 레인을 배정받는 순간 청학골에는 말 못할 긴장감이 돌았다. 음식을 담당했던 입장에서 괜한 자책(?)마저 들었다.” 다행히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어 현장에서 응원하는 교민들보다 기쁨과 감동은 두 배였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경기일정을 마치고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선수들과 청학골을 직접 방문했을 때 고마움과 자부심 역시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이번 박선수 식단의 일등공신인 고희숙 실장은 40대 초반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한식요리에 입문했다. 물론 그 전부터 요리에 관심과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볼리비아, 브라질 등 남미에서 거주하는 동안 현지 재료만을 사용해 떡을 만들었을 정도로 한식에 애정과 관심이 컸다. 그 후 한국에 오면서 평생직업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 분야를 택했다는 것.
그녀의 능력은 줄곧 해외에서 발휘됐다. 파리에서 1년, 홍콩에서 5년간 한식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년간 도미니카공화국대사관에 근무할 때라고 한다. “각국 대사들을 초빙해 음식을 대접하는 순간에는 맛과 향, 색깔까지 갖춘 궁중요리로 한식을 세계무대에 내놓는 마음이었다”라며 당시 뿌듯한 심정을 드러낸다.
아쉽게도 오는 22일 오픈 예정인 청학골 쑤저우(苏州)에서 근무하게 되는 고희숙 실장, 그가 조리하는 곳이 어디든 교민들에게는 한국의 제대로된 맛을, 현지인들에게 한국대표 음식들을 알리는 한식전도사로서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
▷고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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