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은 <양희은의 시골밥상>이다. 느긋한 토요일 아침을 행복하게 해주는 할머니들의 푸근한 말투와 그 분들께서 진두지휘해서 만드시는 군침도는 시골음식에 시선을 빼앗기곤 한다. 한국에 다녀온 지인이 사 들고 온 <양희은이 차리는 시골밥상>이라는 책을 붙들고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한 이유도 할머니들의 말투를 그대로 옮겨 적은 지은이의 글과 할머니들의 담백한 음식 맛이 그대로 전해지는 꾸밈없는 모습들 때문이었다.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할머니들의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다른 듯 하면서도 신기하게 닮아 있다. 집 앞 텃밭에서 기르는 싱싱한 채소들 혹은 산에서 채취해온 나물이나 버섯 아니면 개울에서 건져 올린 것들, 혹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 등을 할머니들의 비장의 무기 된장, 간장, 고추장으로 맛을 내는 것이 대부분인데, 싱싱한 재료와 오래 묵은 장맛의 조화가 할머니들의 담백한 밥상 속의 비법인 듯 보였다. 소위 말하는 푸드 코디네이터의 그림 같은 장식도 없고, 양념의 양을 계량하는 계량 스푼 같은 건 더더욱 없으며, 격식을 지켜 근사하게 차려낸 식탁의 우아함도 없다. 낡은 개다리 소반 위의 소박하고 따뜻해 보이는 밥상이 더 눈길을 끄는 건 그것을 차려내시는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모습과 정성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서 사기그릇에 계란 풀고(충청도 우리 할머니는 ‘닭알’이라고 부르셨었는데….) 새우젓으로 간을 해서 가마솥 밥 옆에 넣어 쪄 주시던 계란찜 맛과 화로에서 보글보글 끓던 구수한 된장찌개가 생각나면, 아직도 군침이 넘어가는걸 보면 맛으로 기억되는 추억은 참으로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인가 보다.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집에서 매년 장을 담그시고 맛있는 김치를 해주시던 엄마 덕분에 맛에 대한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는 우리집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우리 음식을 많이 해먹였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식탁에서 “너희들은 집 떠나서 혼자 살게 되면,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먹고 싶을 것 같니?”하는 나의 질문에 “엄마가 해준 건 다~” 이런 성의없는 대답을 하던 작은 녀석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엄마가 해준 스파게티, 엄마는 소스를 듬뿍 얹어 주니까….”하는 눈치없는 답변을 했다. 오랜 타국 생활에 아이들 입맛이 변할세라 열심히 김치 담가 먹이고, 이것저것 장아찌도 만들어 보고, 된장찌개, 김치찌개, 시래기 나물, 곤드레 나물…. 한국에서 공수해 먹이며 우리의 입맛을 잃지 않게 키웠다고 생각해 왔건만, 아이에게 생각나는 추억의 입맛이라는 게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조한 국적없는 스파게티라니…. 더 열심히 우리 음식을 해먹여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출장길에 시댁에 들러온 남편의 가방 속에 어머님이 말려 보내신 시래기, 무말랭이, 고춧잎이 가득이다. 계절마다 텃밭에 있는 나물이며, 산에 있는 나물을 갈무리 해서 먹기 좋게 보내 주시는 어머님의 정성 덕분에 어설프지만 시골 밥상 흉내를 내본다. 시래기 삶아 들깨가루 넣어 볶아놓고, 말려 보내신 호박으로 나물 만들고, 소금 뿌려 베란다에 널어놓았던 꾸덕꾸덕 마른 조기 굽고,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된장으로 투박한 뚝배기에 찌개를 끓여내면서 우리 아이들의 추억 속에 오늘의 밥상이 구수한 엄마의 손맛으로 남아있기를 바래본다.
▷푸둥연두엄마(sjkwon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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