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리스타’라는 멋진 이름이 있지만 예전엔 ‘커피를 잘 탄다, 잘 끓인다’는 표현을 썼다. ‘커피를 잘 탄다’는 말은 지금의 원두커피문화보다 인스턴트 가루 커피와 설탕과 프림과 잘 끓인 물의 온도가 만나 이루는 환상의 ‘다방커피’ 세대이기 때문이다.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거르지 않고 받았던 선물 중엔 꼭 커피가 있다. 주로 친한 지인들의 선물로, 어디 외국을 다녀오면서 사왔다는 고급원두커피부터 다양한 믹스커피들인데 받을 때마다 고마워하고 마실 때마다 감동하는 나는 ‘진정한 다방커피 메니아’이다. 나의 커피 사랑은 사실 맛보다 멋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깊은 커피 맛을 즐기는 수준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 일상에서 커피는 빠질 수 없는 ‘일상다반사’ 이다.
5살(기억이 난다) 때 이모를 따라 들어간 다방에서 까맣고 뜨거운 쓴맛이 내게 준 충격은 새로웠다. 뜨겁고 쓴 것을 홀짝 거리며 마시는 이모의 모습이 참 멋졌기 때문에. 어릴 적, 손님이 오셔야 장식장위에서 커피와 프리마를 꺼내 환상의 조합으로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수제 커피의 향과 맛을 내는 엄마의 비밀스러운 행동도 정말 멋졌다. 키가 자라 장식장에 손이 닿을 무렵, 동생들(4명이나 되는) 쭈루룩 앉혀놓고 커피에 물 붓고 프리마 잔뜩, 설탕 잔뜩 넣어서 속이 지릴 정도로 달달하고 텁텁하게 타서 한 숟가락씩 퍼 먹던 그 맛이란!!
그 좋아하던 커피를 끊었던 유일한 기간은 임신 기간 동안이었다. 모두가 임신 중에 커피를 마실까봐 걱정을 했지만 임신 중엔 커피 냄새가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딱 출산을 하고 첫 미역국을 먹고 나서 마신 열 달 만의 그 믹스커피의 향이란!!
믹스커피도 하루에 몇 잔을 마시는데 방법이 다르다. 아침엔 팔팔 끓인 뜨거운 물을 3분의 1만 부어 마시고, 점심엔 2분의 1의 뜨거운 물을 부어 믹스 두 개를 넣어 마시고 저녁엔 아침과 같은 방법으로 마시고 하루 종일 피곤했던 날에 침대에 눕기 전 에 진하게 한잔을 마시면 바로 잠이 든다. 이게 바로 나만의 수제 다방커피의 마력. 죽으면 썩지도 않겠다는 소리도 듣고도 집을 떠나는 외출, 여행에서 내 가방에 꼭 들어가 있는 믹스커피 몇 개는 지갑 속의 현금과 똑같다. 친구도 커피궁합이 잘 맞음 더 친해지고 매일 만나도 장소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는다. 차를 오래 타고 가는 길에도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과 믹스를 커피 보온 컵에 마시니 동행한 친구들이 웃는 일도 많다.
뚝 떨어진 기온에 커피가 더욱 생각나는 계절이다. 결혼과 함께 그다지 커피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을 수제믹스커피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했다. 한국보다 비싼 100개짜리 믹스 커피 하나면 제일 좋은 선물이 된다고 믿는 그이랑 사이좋게 커피를 나눠 마시고 있다. 그에게는 끓인 물 반잔에 믹스하나를, 나는 끓인 물 반잔에 믹스 두 개를. 한국보다는 비싼 믹스커피이니 누군가는 아껴 마셔줘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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