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연합뉴스) 중국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진압한 톈안먼(天安門) 사태 17주년을 하루 앞둔 3일 중국은 여전히 긴장 속에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있다.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전격적인 복권조치로 미세한 가능성이 보였던 톈안먼사태의 재평가와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복권은 아직도 요원한 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은 예전처럼 자오 전 총서기 추모회나 민주화 요구 시위 가능성에 대비,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특별감시에 들어가는 한편 톈안먼 일대의 경비를 강화하고 대학가의 동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런 탓인지 중국 내의 움직임은 조용함 그 자체다.
지난달 29일 톈안먼사태 희생자 유족들인 `톈안먼 어머니회'가 성명을 통해 중국 당국이 당시 사태에 대한 공식 판결을 바꾸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게 중국에서 톈안먼사태와 관련해 벌어진 유일한 일이다.
톈안먼사태 재평가 요구는 중국 밖에서 오히려 활발하다.
홍콩에선 지난달 28일 민주화 운동가 1천여명이 중국 정부에 당시 사태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가두행진이 벌어졌고 자오 전 총서기가 지난 97년 자신의 석방을 당 지도부에 요구했던 편지 등을 모은 추모서적도 발간될 예정이다.
당초 올해 중국의 `톈안먼사태 노이로제'는 예전보다는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 정부가 자오 전 총서기 외에 또다른 민주 개혁의 상징적 지도자였던 후 전 총서기에 대해 지난해 11월 탄생 90주년을 맞아 추모기념식을 치르면서 공식 복권 조치했기 때문이다.
자오, 후 전 총서기는 톈안먼사태와 필연적으로 연관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후 전 총서기의 복권은 중국이 톈안먼사태를 비롯한 현대사 재평가에 점진적으로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대두됐었다.
지난해 12월 산웨이(汕尾)에서 무장경찰의 발포로 시위대 14명이 숨진 사건을 두고 외신이 `제2의 톈안먼사태'라고 칭하자 중국 최고지도부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사태를 공정하게 처리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톈안먼사태 당시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를 페인트 계란으로 훼손한 혐의로 17년간 수감됐던 민주화운동가 위둥웨(喩東岳) 기자를 지난 2월 석방하면서 중국의 전향적 자세가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톈안먼사태 재평가만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단 하에 `톈안먼'을 굳건히 닫아두고 있다.
인터넷에선 `류쓰(六四.톈안먼사태)', 자오쯔양, 민주, 자유 등 용어는 검색조차 할 수 없고 언론도 톈안먼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톈안먼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여름궁전(중국명 이허위안(<臣+頁>和園))'이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까지 진출했으나 결국 중국 당국은 이 영화를 상영금지하고 감독에게 5년간 작품활동 금지 조치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위 기자가 석방됐지만 아직도 톈안먼사태에 연루돼 수감된 정치범이 70명에 달한다는게 미국에 본부를 둔 중국인권단체 두이화(對話)기금의 주장이다.
지난달 16일 문화대혁명 발발 40주년을 맞아서도 중국은 침묵을 지켰다. 문혁과 톈안먼사태는 중국 현대사의 좌.우파적 경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에 대해 어떤 평가룰 내릴 수 있을 만큼 중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충분하게 성장하지 못했고 아직 과도기에 놓여있다는게 중국 지도부의 계속된 판단이다.
자본주의 경제실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과 덩샤오핑(鄧小平)이 유훈으로 남긴 중국식 사회주의를 충실하게 견지하기 위해선 13억 중국인들에게 민주와 자유를 용인해선 안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을 법하다.
중국 관영 언론은 이와 관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소련 해체에 대한 회한을 늘어놓으며 중국에 대해 `민주화'를 용납해선 안된다는 충고를 하자 이를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다.
일반 시민과 대학생 대부분이 눈앞의 생업과 취업, 경제활동에 치여 17년 전의 톈안먼사태를 기억치 못하고 민주화, 인권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도 톈안먼사태가 `외국의 행사'로 전락한 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