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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기(氣) 싸움

[2012-05-21, 15:31:43] 상하이저널
작은아이가 이젠 내 키를 훌쩍 넘어 버렸다. 나란히 서 있을 때도 날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등교시간에 맞춰 아일 흔들어 깨울 때도 사뭇 사내아이다운 풍채에 쉽게 아무데나 손길을 보내지 못한다. 어쩌다 엉덩이 근처라도 손이 닿을라치면 기겁을 한다. 엄마는 오늘도 변태(?)가 된다. 내겐 여전히 막내일 뿐인데 아인 자꾸 커가면서 나만의 아이 이길 거부하고 있다. 많이 컸구나.

아침부터 우린 이렇듯, 기 싸움을 시작한다. 조금 빨리 서둘러서 아침밥이 따뜻할 때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거실에 나와서도 또 소파에 드러눕는다. 밥 먹어라, 밥 먹어… 아침마다 몇 번이나 반복된다. 우리 둘의 귀에 못이 박힌 지 오래인 거 같다. 안해도 될 말을,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을 나 혼자 허공에 대고 떠들고 있고, 아인 아이대로 그냥 지나가는 말 인양 아무런 반응도 없다. 혼자서 시계를 보면서 계산을 하고 있는 건지, 그러다가 아이는 정말 엄마를 위해 밥을 먹어 주는 것 같다. 물론, ‘눈뜨자마자 무슨 밥 맛이 있겠냐’ 그런 생각도 들긴 하지만 아침을 안 먹이고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내 나름의 고집으로 아일 자꾸 다그치게 된다.

“몇 끼 안 먹는다고 영양실조 안 걸린다, 억지로 먹일 필요 없다, 먹기 싫은 모양인데 그냥 놔 두지.”

옆에서 부추기는 말들이 들려온다. 그 말이 더 귀에 그슬린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나도 모르게 톡 쏘아진다. 어떤 연구결과에서도 아침밥을 잘 먹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집중력도 좋고, 학습능률도 높다는데…. 아침의 기 싸움은 누가 이겼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승부를 낼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이가 나간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오늘도 밥 먹여 보냈다는 엄마로서의 책임감 완수에 나의 하루의 첫 막이 잘 마무리 된 듯하여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집안에서의 파워게임은 TV 리모콘에서도 시작된다. ‘시청할 프로그램의 선택권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그 집안의 파워권자를 결정하게 된다’ 는 이론이 정말 우리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실제로는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겠지만. 아이는 예능프로그램이, 아빠는 스포츠중계가, 이 엄마는 꽃미남 나오는 드라마가, 각자 원하는 게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기 싸움의 불꽃이 튈 수밖에 없는 것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기 싸움에서 아이들에게 져 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한편으론 안타깝긴 하지만, 이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진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어른들은 인터넷 세상 덕에 시간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보류되어있으니깐 그나마 다행, 양보하기도 더 쉬워지고 관대해 보이기 까지 하려나? 한순간이나마.
나는 오늘도 아이와의 기 싸움에서 완패를 당했다.

아이 왈,
“엄마가 정말 네 가지!다(개그콘서트) 키 작고! 뚱뚱하고! 인기 없고! 시골출신이고! ”

“그래, 그래, 내가 졌다. 오늘도 또 KO 당했다. 두고 보자! 시험결과 나오면 그 땐, 내가 널 KO 시켜주마.” 이어,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거다”라고 한마디 던지니,

“열심히 하고 있다구요. 숙제 벌써 다 했어요. 안보여요?”

한 마디도 지려 하지 않는다. 눈에도 힘이 들어가 있고, 변성기가 왔는지 목소리까지 걸걸 거칠어지면서 내 귀에 계속 거슬린다.

“엄마, 아직은 귀 잘 들리거든. 부.드.럽.게. 말해라!”

잠든 얼굴에선 여전히 나의 막내이건만, 이제는 떠나가고 있다. 좋은 말로는 성숙이라 하는데, 우린 서로를 할퀴면서 상처만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이성적인 대화보다는 손이 먼저 말을 하려 하고, 가슴 한 구석에선 불덩이가 자리잡고 있고, 다정다감한 눈길과 대화는 자꾸 옆길로 빠지고, 우린 같은 길을 가고자 하면서도 바라보는 눈길은 왜 자꾸만 멀어지려 하는지.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우리는 서로를 향해, 아니, 허공에 대고 오늘밤도 떠들어 댈 것만 같다.

“막내야! 그래도, 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만만한 엄마라도 늘 곁에 있어 좋은 거지?”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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