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왕언니라고 부른다. 왕언니 남편이 연길에 있는 호텔을 책임 경영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에 우리들은 백두산기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왕언니 내외분도 만나보고, 백두산에 올라 천지도 구경하고자. 물론 여러모로 솔선수범하신 이웃언니의 아저씨덕분에 우리들의 기행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부터 무기개빛이었다. 정말로 우리아이가 비행기 창밖으로 비춰지는 무지개를 사진으로 담았다. 호텔로비에서 우리들을 맞아주시는 왕언니는 정말 반가워하셨다. 비행기가 연착되었기에 기다림이 지루하셨을텐데도 웃음이 얼굴 가득했고, 잡아주는 두 손이 너무 따뜻했다.
우리들의 백두산 첫 기행지는 두만강이었다. 막연하게 그려보던 그 웅장할 것 같은 그런 강이 아니었다. 아버지 고향 길에 흔히 보았던 그런 평범함 그것이었다. 강폭도 내 머릿속에 막연히 그려보았던 것보다 훨씬 좁았다. 물살이 꽤 센 편이었지만, 그 곳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물소리마저 애잔하게 들렸다. 강폭의 3분의2가 중국 땅이고, 3분의1만이 북한땅이라는 설명에 우리들의 실망감도 커졌고, 다음으론 용정중학교에 들러 독립투사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작은 아이와 더불어 방명록에 사인도 하고 윤동주 시인의 교실 의자에 앉아 사진도 한 컷 찍어보고 풍금도 한번 만져보았다.
오후에 백두산 북파에 올랐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면서 보이는 전경이 한눈에 보아도 광활해 보였다. 넓은 고원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건~장해 보였다. 백두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천지는 그 물색만으로도 환상이었다.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미술시간에 배운 얕은 지식으론 그 색깔을 도저히 단정지을 수 없었다. 단아해 보였고, 물결조차 일지 않고 있었다. 어떤 소요에도 끄떡하지 않을 거 같은 경이로운 자태로 우리들의 눈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들의 마음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옆에서 가이드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우리들의 윈치(运气)를 극찬하고 있었다. 그 다음날 오른 백두산 서파에서는(계단 1300개, 실제로는 1400개 정도) 비가 와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해발 2470m에서의 사진 한 컷,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 비가 세워져 있는 그 곳에서 또 인증 샷.
애국가 가사의 한 구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천지(天池)가 담고 있는 그 경이로운 물은 결코 마르지 않을 거 같았다. 감히 우리 미약한 인간들이 어찌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있었다. 누가 이곳에 첫걸음을 디뎠을까? 처음부터 우리들은 이 곳을 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었을까?
이번 백두산 기행은 밀린 숙제를 푼 것 같았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이었던 왕언니를 만나 회포를 풀었고, ‘백두산은 왜 가?’라는 작은 아이의 의문도 풀렸다. 요즘 연일 런던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애국가를 들으면 내 머릿속에선 자연스레 백두산 천지에 서있던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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