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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식탁 위 약통

[2012-11-23, 23:00:00]
아이를 깨우러 방문을 여는 순간, 아이가 두 손으로 목을 감싸며 아프다는 몸짓을 했다.  몸은 벌써 깨어있었는데 엄마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프다는 어리광을 피우려는 듯,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연출하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어떡하니? 너 몸이 이렇게 아프기 시작하면, 이 번 주 토요일에 축구시합 못 나가겠네~ 안타깝네!” 놀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벌떡 일어났다.

아이가 커갈수록 병치레가 확실히 적어졌다. 그러다보니, 집에 갖춰놓고 있는 상비약도 줄어들고 있다. 외상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찾는 횟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감기증상에 따른 약에는 관심이 줄어들어, 역시나 약상자 서랍엔 아이가 복용할 수 있는 목 감기약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성인용약을 갈아서 먹이고, 여기 중국에서 유명한 수박씨로 만든 가루를 목안으로 뿌려주었다. 아이는 만족한 듯,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문을 닫는 순간, 아이에게 적절한 처치를 못해 준 것 같아, 내 맘이 무거워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내 모양새가 꼭 이랬다. 미리 좀 챙겨둘 것을 아이가 컸다는 자만심에 아이에게 소홀해 진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신종플루에 걸려 마음 졸이던 때가 불과 3년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까맣게 잊어가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기에, 행복할 수 있다고 하더니, 나도 이 범주에 확실히 속한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 때의 불안감과 곁에서 지켜보던 안타까움이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버린 듯 하다. 확실히, 그러한 듯, 올해는 아직도 독감예방주사를 맞지도 않고 있다.
 
‘이미 너무 늦어 버렸는데 뭐’라고 생각하면서, 또 마음 한 구석에선 아이의 큰 몸집을 핑계 삼으면서, 그런데 오늘 아침엔 아이의 갑자기 안 좋아진 몸 상태를 보면서 살짝 후회스러움과 미안함에 부산스러운 아침을 보내야 했다.

약 상자 속엔, 아이의 약보단 확실히, 내가 먹는 약이 더 많아졌다. 위장약, 몸살약, 두통약, 정로환 등등…. 그 동안은 나 보단 아이 때문에 병원에 드나드는 횟수가 훨씬 더 많았었는데, 이젠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몸에 알러지가 일어나서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고,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마구 먹은 탓에 소화제는 이제 식탁 위에 아예 자리잡고 있다. 약상자에 도로 넣을 틈이 없다. 남편은 면역력 형성엔 홍삼이 최고라며, 홍삼 먹으라고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고….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약 도사(?)였었다. 약국에 가면, 스스로 조제를 하셨다. 자신은 이런저런 약이 잘 들어맞으니깐 그 약을 달라고. 약사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서, 그때는 조금은 엄마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똑 같아 보이는 알러지 약도 나에게 맞는 게 있고 맞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몸이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애들 아빠가 내가 원하는 정확한 약을 사다 주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말투가 나온다.

70평생을 약을 모르고 살았다고 아버진 말씀하신다. 그러나, 아버지의 식탁 위에도 여지없이 약이 쌓여있다. 병원에서 받아온 호흡기 관련 약, 당뇨약, 부정맥약, 그리고 기타 온갖 영양제들….  아버지집에서 아침을 먹을 땐,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식사 30분전 복용약, 식후 복용해야 하는 약…. 그래도 열심히 챙겨드신다. “내가 이 약들 다 먹다가 죽을 것 같다.. 의사들이 날 마루타로 실험하고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농담을 하시면서도, 그래도 하루도 걸르지 않고 열심히 입속으로 넣으신다. 옆에서 나도 거든다. “그렇게 좋은 약들이니, 밥은 안드셔도 되겠어요.”

꼬박꼬박 약을 챙겨드시는 아버지를 곁에서 보면서, ‘참, 기억력도 좋으셔, 어쩜 저렇게 잊어버리시지도 않으실까?” 그러면서도 나도 조금씩 닮아가지 싶다. 지금은 1~2개씩 먹는 약이 70이 되면 아버지 이상으로 먹지 않을까 싶다. “아들, 며느리들 앞에선 표나지 않게 적당히 드세요. 좋은 거 있으면 아들이나 며느리랑 같이 좀 나눠 드시구요.”
 
영양제를 복용할 때면, 아버지 식탁 위 약통(약, 영양제, 각종 즙들)이 생각나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버지에겐 그야말로 정신적지주인 셈이다. 다음에 아버지 집을 방문했을 땐, 또 어떤 영양식품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입가에 또 다른 쓴 웃음이 지어진다.
 
▷아침햇살(sha_bea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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