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르치던 학생들 중 루빅스 큐브에 아주 정통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말이 약간 어눌하고 언어감각도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큐브를 꺼내, 손가락 끝으로 큐브 맨 윗 행을 회전시키고 오른쪽 열을 아래로 감아가며 각 면의 색깔을 맞춰갈 때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해지며, 그 아이에게서 신기(!)마저 느껴졌습니다. 덩달아 큐브를 사가지고 이리저리 굴려보던 저는 몇 분만에 금새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건 도무지 제 오감으로도, 머리로도 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 Spark of Genius>이란 책에서는 뛰어난 창조성을 보여준 인물들을 중심으로 13가지의 직관의 패턴을 보여줍니다.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나눈 관찰, 형상화, 추상,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의 13가지 프로세스를 읽다 보면 우리 개개인이 얼마나 제한된 방식만을 활용하며 살고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분석은 교육계에 큰 영향을 끼쳤던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Multiple Intelligences)”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1983년에 출간한 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기존에 알려진 IQ와 같은 제한된 지능영역을 넘어 더 다양한 지능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이런 여러 학자들 덕분에 현재의 교육자들은 인간의 능력은 다면적이고 교육자는 그 다면을 들여다보는 눈과 이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책임을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런 이론들을 접하다 보면, 나의 사고방식이나 문제해결방식이 절대적 가치를 가질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저는 오랜 기간 동안 영어만을 가르쳐 왔기 때문에, 수업을 할 때, 과제를 내 줄 때, 수업 활동을 준비할 때, 분명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 특유의 사고 과정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기 수업에서 자기 일상에 대한 묘사 활동을 진행한다면 표현력이 부족한 학생을 두고 “어휘가 부족해서,” “문법이 약해서,” 등 언어 중심으로 평가하거나, 혹 학생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면, “참여의지가 없어서,” “수줍어서” 등의 판단을 내리며 그에 따른 처방을 준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학생이 루트번스타인이 분류한 프로세스 중 “추상”적 사고 프로세스가 유독 발달하여 묘사보다는 핵심이나 두드러진 특질을 찾아내는 능력이 더 뛰어났었다면 어떨까요? 혹은 하워드 가드너가 말한 자기이해지능이 부족하여 자신에 대한 이해가 낮아 자기 일상을 떠올리며 묘사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아이었다면?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해보면 한 학생에 대한 저의 판단은 제한된 사고 과정에 따른 극히 일차적인 평가에 불과함을 깨닫게 됩니다.
루빅스 큐브에 뛰어난 제 학생은 겉으로 나타나는 자기 표현력은 부족해도 “패턴이해”와 “패턴형성”의 능력이 뛰어난 아이였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루빅스 큐브 공식사이트에 가서 기본공식을 한참 들여다 보고 이를 외운 후에야 큐브를 맞출 수 있는, 그럼에도 그 원리가 아직도 아리송한 저는 아주 기초적인 패턴이해는 가능할지언정 이를 이용해 패턴을 재창조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입체적인 특징을 고려하면, 사람 개개인이 참으로 신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학교, 사회에서 가치를 두는 몇몇 사고패턴이나 지능영역에 갇혀 자존감을 잃어버린 많은 학생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교육자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나의 부족한 면들을 알면서 학생들 앞에서 숙련과 습관으로 다져진 자신 있는 영역에서만 고개를 쭉 뻗고 큰소리 치고 있는 모습은 조금은 덜 겸손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를 생생하게 보기 위해 3D 안경을 쓰고 스크린의 평면을 입체화 하여 인식하듯이, 한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마찬가지의 안경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자기에게 강점이 될 수 있는 영역을 찾고, 좀 더 계발하고 싶은 영역을 발견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아림(SETI 종합학원 영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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