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 자의 삶은 아름다워
대한민국주상하이문화원 김진곤 신임원장을 만나다
싱그러운 바람이 행복함을 전해주는 3월의 어느 날, 세 번째 멘토링을 들려줄 대한민국주상하이문화원 김진곤 신임원장을 만났다. 그의 이야기는 어렸을 적부터 특출 났던 이의 위인전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경험이 베어 있는, 듣는 이들의 공감을 부르는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다.
멋쩍은 웃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나가는 그는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사람이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진학했던 보통의 멘토들과는 달리, 경북 영덕 출신인 김진곤 원장은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다. ‘시골이 싫어 떠나보자’라는 생각으로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금속학과에 진학하게 됐던 김 원장은 곧 자신과 맞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대학 진학을 위해 기능사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될 때도 있더라구요.” 열심히 시험을 준비해오던 그였지만, 시험 당일 자신의 부주의로 주물 틀을 깨트려 떨어지게 되고 그때부터 김 원장의 인생에 기나긴 방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군대도 다녀와 보니 20대 중반을 훌쩍 넘겼더라구요. 그래서 무작정 보따리 하나만 들고 종로 행정고시 학원으로 왔고, 6개월 후 다행히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게 됐어요.”
7년여간의 백수생활은 그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사람은 능력과 두뇌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삶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부처 공무원시절, 그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병행하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갔다. 일요일에는 평일에 부족한 잠을 채우느라 아이들에게 ‘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지내 온 어느 날, 김 원장은 박병선 박사의 외규장각 발견처럼 “베이징 도서관 등 중국에도 잃어버린 한국 자료가 있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게 돼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작심삼일 스타일이지만 꾸준히 중국어 공부를 해오던 김 원장.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뜻을 갖고 일하면서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던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1999년 중국 사회과학원에 4개월 단기연수로 다녀갔던 것이 인연이 돼, 2001년 12월 그는 본격적인 중국유학 길에 오르게 됐다. “오래 걸렸지만 되든 안되든 출발부터 늦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한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생활했어요.”
중국에서의 유학생활은 그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관광경제학 석사를 이수한 그가 귀국 후, 자신의 전공을 살려 국제문화협력과에서 중국과의 문화교류 업무를 보게 된 것. “영어권, 유럽권 유학파들이 주를 이루던 시절, 대부분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적어 운 좋게 제가 중국통이 돼버린거죠.” 겸손함이 베인 그의 말이지만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했던 그의 장점이 결국은 긴 시간이 지나며 조직에서 인정받게 됐고 현재 상하이문화원 원장으로 부임을 받게 됐다. “중국어에 뜻을 둔지 오래됐지만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죠. 하지만 그 뜻을 포기하지 않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교류의 밑바탕은 말과 문화’라며 “상하이한국문화원을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김 원장. 그는 유학생들에게 10여년 전, 중국 유학 길에 올랐던 자신을 회상하며 “유학 오면서 한국인 학생들과 어울리고 놀다 보니 시간이 참 빨리 가 후회가 됐죠. 힘들겠지만 상하이에 유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이 중국사회에서 중국인 학생들과 어울렸으면 해요”라며 바람을 전했다. 또한 “오랜 백수생활을 했지만, 뜻을 둔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저처럼, 학생들도 자신이 원하는 일에 의지를 갖고 생활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상하이에듀뉴스/김효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