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절(清明节)은 3월에 드는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로 날씨가 따뜻해지고 새싹이 돋아나 청명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청명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으로 태양의 황경(黄经)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으며,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있다. 이날은 본래 지난 겨울 동안 흐트러진 조상의 묘를 정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으나, 현재는 주로 교외로 봄나들이를 가거나 열사 능원에 가서 열사를 추모하는 날로 바뀌었다. 중화민국 이래로 청명절은 중요한 명절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2006년 '비물질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고, 2009년에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점차 중요한 명절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 작업이 된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 밭갈이를 한다. 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고,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활동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곳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한다.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것들이다.
중국에서는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寒食條)에 기록하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아 오늘날 민간에서도 뚜렷한 구분 없이 전해지고 있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음력 2월이나 3월, 한식이 들 때쯤이면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한식은 농촌에서 한창 씨를 뿌릴 때라서, 특별한 놀이보다는 성묘를 하면서 보냈다. 옛날엔 나라에서 관리들에게 성묘하러 가라고 휴가를 주기도 했다고 한다.
한식에는 이런 전설도 있다.
중국 춘추시대 문공이란 왕자가 있었다. 문공이 왕이 되기 전 온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됐을 때, 개자추라는 신하가 먹을 게 떨어지자 자신의 다리살을 베어내 줄 정도 충성을 다해 모셨다. 그러나 문공은 왕이 되자 개자추의 충성을 잊었고, 실망한 개자추는 산에 들어가 버렸다. 문공은 나중에야 개자추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개자추가 말을 듣지 않자 그를 끌어낼 목적으로 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문공은 탄식을 하면서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 날에는 불을 때지 않고 찬밥을 먹도록 해, 한식이 생겼다는 전설이다.
Tip. 한식과 청명에 관련된 속담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청명과 한식이 하루차이로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올해처럼 청명과 한식이 같은 날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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