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시작된 아토피 때문에 나물 종류를 많이 먹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보통아이들이 잘 먹으려 하지 않는 시금치도 우리 아인 즐겨먹는다. 물론, 채소가 듬뿍 들어가는 비빔밥도 즐겨먹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 요즘 들어 자주 찾는 채소가 있다. 시~저 샐러드! 전문식당에서 나오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로메인 상추, 잘게 썰어 볶은 베이컨에 치즈, 또 그 위에 소스를 살짝 뿌려주니 나름 먹는 맛이 일품인양 포크질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 아이가 물어봤다. 왜 이걸 시~저 샐러드라 하느냐고?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서 설명해주었다. 로마의 그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에서 유래된 게 아니라고. 1920년대에 캘리포니아에서 Caesar Cardini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Caesar’s restaurant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 식당에서 만든, 치즈를 곁들인 상추샐러드가 헐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으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Caesar Salad로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내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학교에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들이 많아졌다면서, 은근 슬쩍 엄마의 도시락을 기대했다. 큰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땐 가끔씩 김밥을 싸주던 기억이 나서, 한번도 도시락을 싸준 적이 없는 작은아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떡할까. 고민하다 다들 가장 간단하다고들 하는 삼각김밥이라도 한번 해줘야겠다 마음 먹었다. 사실, 난 삼각김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번도 어떻게 만드는지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물론, 만들어본 적은 더욱이나 없었다. 그래도, 둘째가 원하는 바를 한번 들어주기 위해서, 삼각김밥 틀, 삼각 김밥용 김도 샀다. 저녁 설거지를 다 마치고 새 밥을 지어서 도전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삼각 김밥용 김이 신기하기만 했다. 설명서를 읽어도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위에서 접어 내린 김을 밥밑으로 넣어야 하는 건지, 도대체 스티커는 또, 어디쯤에 붙여야 하는 건지, 삼각 김밥 싸는 걸 한번도 직접 눈으로 본적도, 관심을 가져 본적도 없어서인지 맘대로 되질 않았다. 할 수없이 이웃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방법을 묻기를 서너 차례, 완성은 했는데 밥과 내용물의 비율이 영~ 안 맞아서 내가 먹어봐도 별로였다. 걱정이었다. 작은 아이에게 삼각김밥 싸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이제 와서 취소하면 실망이 클 텐데…. 생각 끝에 삼각김밥 수만큼 스팸을 따로 구워 곁들였다. 간이 맞지 않아 싱거우면 같이 먹으라고.
아이는 뿌듯하게 학교에 삼각김밥 도시락을 들고 갔다. 어~ 우리 집에도 이런 도시락통이 있었네. 친구들도 이런데 담아오던데. 신나게 들고 갔다. 한번 소원성취한 둘째 녀석, 더 이상 도시락 얘길 꺼내질 않는다. 기대한 만큼의 감동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도 아무 말 안했다. 며칠 있다 들은 말, 엄만 그냥 볶음밥 도시락이나 베이컨말이가 제일 나을거 같아. 또 다시 아무런 대꾸도 안했다.
아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엄마표 도시락이었을 뿐이라는 걸 안다. 그 속에 들어 있었던 삼각김밥의 맛은 이미 잊혀졌을 것이다. 나도 그다지 삼각김밥이 아직은 그다지 썩 끌리지 않는다. 내가 만든 삼각김밥은 전혀 균형 잡힌 식단이 아니었기에.
일요일 점심, 토마토소스에 볶은 소고기를 듬뿍 넣은 스파게티, 시~저 샐러드! 둘째의 입가에 살포시 웃음이 생긴다. 포크질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꽤 만족스런 모양새다. 나도 나름 셰프(chef)가 된 거 같아 뿌듯해졌다.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 이렇게 좋아하는 걸 도시락에 넣어주지 못하다니 좀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