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들 활개… 전문가 "의료사고 땐 구제 길 없어"
브로커, 인터넷 등 통해 알선 "합법이고 진료기록 안남아"
한국인, 中서 낙태 땐 불법… 임신·낙태후 비행 자체가 위험
"몸이 회복되는 대로 중국 관광도 즐기다 올 수 있으니 휴가 날짜만 맞춰 보세요. 이번 주에만 벌써 한국에서 20명이 다녀갔습니다."
중국 산둥성(山东省) 옌타이(烟台) 현지 병원과 연결된 임신 중절(낙태) 수술 브로커 A씨가 지난 30일 인터넷 전화로 말했다. 기자가 "여자친구가 임신 3개월인데 낙태를 원한다"고 하자 A씨는 "3박 4일 일정 기준으로 수술비에 교통비·숙박비 포함 200만원, 보호자 동행시 70만원이 추가된다"고 말했다. A씨는 "공항으로 마중 나가 숙소와 교통까지 챙겨주니 관광하는 셈치고 몸만 오면 된다"고 했다.
휴가철을 맞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 현지 병원에서 임신 중절(낙태) 수술을 받도록 알선해주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맘때는 여행을 간다는 핑계로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중국에서 수술을 받으려는 한국인들이 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법이 낙태를 허용하더라도 한국인이 낙태를 받는 것은 불법이며,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구제받을 길이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지린성(吉林省) 옌지(延吉)에서 활동하는 다른 브로커 B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4박 5일 일정으로 140만원을 제시했다. B씨는 특정 여행사를 지정하며 "C여행사를 통해 비자 발급과 왕복 항공권 예약을 할 경우 추가 할인도 해주겠다"고도 말했다.
중국에서는 1971년 한 자녀 정책 시행 이후 낙태가 합법화돼 작년까지 3억3600만건 이상의 임신 중절 수술이 시행됐다. 본지 기자가 접촉해 본 브로커들은 이 점을 들어 "중국은 낙태가 합법이고 가명을 쓰면 진료 기록이 남을 일도 없다"거나 "낙태에 관한 한 경험 많은 중국 의사들 실력이 더 우수하다"며 중국에서 낙태를 받을 것을 권유했다. 심지어 "한국 의사들이 직접 진료하는 안전한 병원"이라고 홍보하는 브로커도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해외 원정 낙태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한다. 차희제 프로라이프의사회 회장(산부인과 전문의)은 "임신·낙태 후 비행기를 타며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하며, 특히 의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낙태할 경우 감염이나 출혈 등 의료사고가 발생해 불임이 되거나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찰은 "낙태가 합법인 중국에서 한국인이 수술을 받으면 한국 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된다"고 했다.
2010년 2월 국내에서 불법으로 낙태 수술을 한 산부인과들이 무더기로 고발당한 이후 중국으로 원정 낙태를 떠나는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작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낙태 수술 추정 건수는 2005년 29만건에서 2010년 16만건으로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이처럼 낙태 건수가 줄어든 데에는 '원정 낙태' 같은 편법이 동원된 게 한 이유라고 의료업계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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