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세에는 능신이나, 난세에는 간웅이로다.” 이것은 고대 한나라의 관상가였던 허소가 조조에 대해 내린 평가이자 현대의 대중들이 알고 있는 조조의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조조 역할을 맡은 경극 배우가 관중들의 돌에 맞아 죽는 일들이 벌어질 정도로 오랫동안 그는 삼국지의 절대적인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를 리더십 넘치고 다재 다능한 인물로 묘사하는 재평가도 만만치 않다. 어째서 같은 인물을 놓고 전혀 다른 평가들이 오고 가는 것일까?
현재 한국에 출판된 대부분의 삼국지에 대한 책은 중국 원나라의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자연스럽게 내용도 삼국지연의의 틀에 기초한다. 나관중은 한나라 황실의 종실이며, 한나라의 재건을 시도했던 유비의 촉나라를 중심으로 잡았다. 촉한정통론에 따라 삼국지연의는 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유비에 대항하는 조조를 간신이자 악인으로 묘사한다. 흔히 소설이 그렇듯이 선악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더욱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편향된 시선으로 삼국지를 접하는 대중들은 유비를 인정 넘치고 자비로운 군주로, 조조를 잔인한 냉혈한으로밖에 인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정통 사서인 진수의 삼국지를 보면 조조는 매우 실리적이고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예로,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정책들을 펼쳤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구현령, 즉 신분과 도덕성에 관계없이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람으로써 쓰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위나라에는 인재들이 많았던 반면, 주색으로 악명 높았던 곽가나, 인육을 군량으로 공급했던 정욱처럼 인격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물 또한 많았다고 한다.
아무리 많은 인재들을 수하로 두고 있어도 제대로 쓰지를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조조는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굉장한 능력이 있었다. 그는 능력 있는 신하들의 자질을 알아보고, 그들을 매우 아끼고 후한 대접을 해주어서 충성을 바치도록 하였다고 한다. 많은 인재들을 밑에 두고서 각자 능력에 맞는 자리를 주어서 효율적으로 부릴 수만 있다면 한나라의 수장으로써 굉장한 메리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조조의 위나라가 촉나라와 오나라보다 강세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조조의 이 용인술이다.
자신의 사람들, 즉 그의 가신들에게는 너그럽고 전폭적인 믿음으로 대해서 존경을 받았던 조조지만 그의 백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병호제, 금주제, 둔전제 등, 경제적, 군사적으로는 이익이 됐을지는 몰라도 백성들에게는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운 정책들을 세웠다. 심지어는 백성들이 유비를 따른 것은 유비가 좋아서가 아니라 조조가 싫어서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백성들에 대한 무배려가 민심을 잃게 한 것이다.
조조는 정치적으로 보나 군사적으로 보나, 카리스마 넘치고 매우 뛰어났던 사람이었음 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실리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당시의 가장 중시되던 인(仁), 효(孝), 충(忠)과 신(信) 같은 미덕을 다소 소홀히 여기고 백성들을 위하지 않는 정치로 인해 자신의 평가를 절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군주이다. 조조는 매우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지만 그 평가들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저 개개인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서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고등부 학생기자 위정원(상해중학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