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 칼럼]
코닥의 '몰빵 추억', 남의 일일까?
중국에 ‘98협의(協議)’라는 게 있다. ‘코닥의 몰락을 자초한 협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1990년대 중반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필름메이커 코닥은 돌파구를 중국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후지필름이 약 6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독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당시 코닥 CEO였던 조지 피셔는 주룽지(朱鎔基) 총리를 만나 ‘시장 독점을 인정해 주면 부실 국유 필름업체들을 정상화시켜 주겠다’고 제의했다. 국유기업 개혁에 열을 올리고 있던 주 총리가 이를 받아들였고, 코닥과 중국 정부가 1998년 3월 체결한 게 바로 ‘98협의’다.
성공하는 듯했다. 코닥은 3년 만에 중국 필름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했고, 중국 전역에 약 8000개의 현상소를 차렸다. 후지필름을 몰아내고 중국 안방을 차지한 셈이다. 그게 함정이었다. 코닥은 계약대로 12억 달러를 국유기업 정상화에 쏟아부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코닥이 중국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세계 필름업계에서는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코닥은 디지털 물결을 타지 못했고, 파국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다. ‘몰빵’ 투자가 부른 참사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현지에서 스스로의 입지는 약해진다. 요즘 빈번한 중국 언론의 ‘외국 기업 때리기’만 봐도 그렇다. 올 들어서만 폴크스바겐, 애플,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 폰테라(뉴질랜드 우유기업), 삼성전자 등이 두들겨맞았다. 사정이야 어떻든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들어줘야 했다. 폴크스바겐은 서둘러 리콜에 나섰고, 애플의 CEO 팀 쿡은 중국어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삼성 역시 사이트에 ‘반성문’을 올려야 했다. 중국 시장을 잃는다면 기업 실적에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몰빵 참사’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STX그룹 회생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STX다롄(大連)조선소 투자가 그렇다. STX는 6년 전 글로벌 경기 흐름을 읽지 못하고 28억 달러(약 3조원)를 퍼부었다. 공장 운영에 대한 뚜렷한 전략 없이 100% 단독 투자를 감행했다. 결과는 참혹하다. 투자금은 고사하고 매각 자체도 불투명하다. ‘그냥 중국에 던져놓고 나와야 할 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대형 투자는 끊이지 않는다.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을 들고 충칭(重慶)으로 가기로 했다. 성사되면 조 단위의 투자 규모란다. 글로벌 경기, 자금력, 기술 우위 등을 충분히 감안한 결정인지 궁금하다. 삼성과 LG는 공급 과잉 우려 속에서도 중국에 LCD 공장을 완공했거나 짓고 있다. 삼성의 75억 달러짜리 시안(西安) 반도체공장도 한창 건설 중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국내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중국은 모든 걸 다 걸어도 되는 시장인가? 코닥의 ‘몰빵 추억’을 되새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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