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는 로컬유치원생활을 하면서 '뻔딴(笨蛋)'이란 닉네임도 함께 얻었다. 엄마 껌딱지로 늘 함께 지내다 둘째를 유치원에 보내며 나도 함께 유치원을 다녔다. 중반(中班)으로 수월하게 들어가기 위해 일찍 빠오밍(报名)을 한덕분에 샤오반(小班) 끝车무렵에 반을 배정받았지만 가을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스쿨버스가 배정되지 않아 함께 등교하고 하교하기로 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들여보내면 난 유치원 근처 카페에서 반나절 보내기를 1주일, 1시간 모닝커피 마시기를 1주일을 했다. 이제 둘째도 유치원에 보냈으니 실컷 내 시간을 가져보는 자유?가 아니라 언제 유치원에서 전화가 올지 몰라 근처에서 5분 대기를 했던 것이다. 하교 시간에 맞춰 20분쯤 여유있게 가서 아이를 기다리는데도 2층 건물 유리창 사이에 둘째 얼굴이 보이다 말다를 반복한다. 젖 못땐 강아지 마냥 엄마를 찾는 눈빛이란.
엄마를 찾는 아이의 표정이란 저런 거구나. 코끝이 뜨거워지지만 중국생활을 하기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 잡던 그 시간은 2년이 지나도 저리기만하다. 중반으로 정식입학을 하면서 두어달이 지나 유치원 야외소풍에 기쁜 마음으로 남편과 시간을 내어 따라갔다. 유치원의 소풍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대절버스에 레크레이션 강사와 오지 못하는 학부모 대신에 아이를 돌봐줄 보조 선생님까지 준비하는걸 보면서 아이를 맡기는 부모입장으로 안심이 되었다.
출발하는 버스안에서 옆에 앉은 꼬마친구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 아는 척을 한다.
"이제 OO가 뻔딴이 아니에요, 중국말도 잘하고 우리랑도 잘 놀아요~"
뻔딴소리에 당황한 건 우리 부부가 아니라 아이였다. 늘 이쁘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집의 공주노릇만하던 둘째는 친구의 고자질?에 어쩔 줄 몰라했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소린 한번씩 해도 웃으며 잘 다니고 좋아하는 척!해서 잘 적응하는 줄만 알았는데 바보라는 놀림도 같이 이겨내느라 애썼을 아이를 생각하니….
아닌 척 못들은 척 고개를 돌리는 아이를 보며 우린 별거 아니라고 심히 쿨~한척했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얻은 건 두드러기발진도 있다.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하다 보니 아이는 온몸으로 힘든 티를 냈다. 모든 자극에 예민해진 아이가 된 것이다. 처음엔 6개월에 한번, 그 다음엔 1년에 한번 발진을 겪으며 아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다.
울퉁불퉁해지는 피부에 약을 바르고 링거를 맞으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발진은 '몸안에 공룡이 살고 있을까 봐 무섭다'는 아이의 표현만큼 무섭게 올라왔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로컬소학교 입학도 쉽지 않았던 게 학교마다 중국 입학생 못지 않은 실력을 원하고 외국학생입학에 대한 숫자제한이 있다 보니 가고 싶다고 갈수 있는 게 아니었다.
1학년 입학식을 하면서 아이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뭔가 말할 수 없는 성취감에 200여명의 신입생 중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아침 7시에 학교 가고 오후 4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와 과제, 빡빡하게 돌아가는 학과과정은 역시나 힘들다. 큰아이를 통해 겪어본 과정임에도 둘짼 둘째대로 쉽지 않다. 그리고 며칠전 다시 두드러기 발진이 올라왔다.
"힘들만도 하지." 다행히 약을 바르고 먹는 것 만으로도 쉽게 아물었다. 증상도 가벼웠고 아이는 학교를 쉬며 이틀이란 휴가를 얻었다. 하루종일 엄마곁에서 아이는 심심해했다. 학교에 가고 싶다고 중국어교재를 꺼내 혼자 공부를 하는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던 겁많은 뻔딴이 아닌 총명하고 성실한 신입생이었다.
"엄마 나 학교에서 시험봤어~ 만펀 받았어 내가 제일 잘했다고 라오스가 칭찬해줬어 아빠한테 꼬기 사달라고 할거야" 학교에서 학습능력 평가를 한 모양이다. 어찌나 자신감있게 말하는지 아이를 위해 외식을 했다.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잘해서 상주고 싶다는 아이의 모습에 진짜 학부모가 된 든든함을 느끼고 있다. 한국이었으면 유치원 다닐 나이에 무거운 가방 메고 학교다니는 아이를 위해 아침마다 응원을 한다.
“엄마 똥강아지 오늘도 잘 하고와~”
▷Betty(fish7173.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