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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7살 엄마의 한글 떼기

[2013-12-27, 23:28:22] 상하이저널
1970년대 한국만화 마루치아루치, 태권브이와 디즈니만화의 인기는 최고였다.
1970년대 한국만화 마루치아루치, 태권브이와 디즈니만화의 인기는 최고였다.
 
 
“이게 뭐야? 하하핫~”

가장 소중한 것만 따로 챙긴 가방을 열어본 남편이 소리 내어 웃는다. 결혼 할 때 챙겨온 나의 소중한 국어공책, 그걸 중국에도 갖고 왔다. 기영아 놀자, 바둑아 놀자~로 시작하는 7살 문맹탈출의 시작이었던 국민학교 (‘일제잔재 청산’으로 일제시대부터 54년간 사용돼온 국민학교가 1996년 3월 1일,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1학년 국어공책을 남편이 본 것이다. 어려서 종알종알 말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글도 빨리 배우고 싶었다. 지렁이가 기어가듯이 고불고불한 그려가며 혼자 놀던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 한글을 배우면서 글을 안다는 기쁨도 잠시. 숙제가 많아도 너무 많아 나가 놀지도 못하고 방과 후면 국어책을 펼쳐놓고 열심히 공책에 써내려갔던 나의 영이, 순이, 동수, 기영이, 바둑이. (국어책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영희, 철수는 이후 세대이다.) 국어 책 속의 주인공들은 나의 공책으로 옮겨옴과 동시에 상상 친구가 되었다.

지금의 내 모습으론 상상이 안 되지만 그땐 상당히 낯을 가리고 내성적이어서 제발 좀 밖에 나가 놀라고 대문밖에 내다 놓으면 저녁나절까지 대문 앞에 그대로 앉아있었다고 한다. 내게 국어 책 속의 친구들은 굳이 밖에 나가 놀지 않아도 오히려 칭찬을 받게 하였다. 이 국어책 친구들은 곧잘 나를 시험에 들게 하였으니 바로 받아쓰기. 글자란 상상대로 지어내서 그려도 안 되고 지어내도 안 되고 앞뒤 바꿔 써도 안 된다는 거다. 한글친구는 다루기 어려운 까탈장이였다. 내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엄만 태어날 때부터 한글박사였던 양 잘난 척을 하지만 피는 못 속인다고 아이들이 하는 실수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7살 나와 똑같다. 더 재밌는 건 글씨체도 똑 같다는 것이다.

오랜 기억속의 엄마가 한글을 가르쳐주시던 재밌던 기억은 주고받는 대화로 글을 알려주셨다. 입학을 하고 나서 엄마와 나의 대화는 스케치북하나, 크레스파스 하나로 시작 했다. 엄마와 나의 말이 글로 그려질 때의 희열이란! 모르는 글자는 대충의 그림으로 그리면 엄마는 반듯하게 한자 한자 적어 주시곤 했다. 이 방법은 중국에서 나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 좋은 팁이 되었다. 중국에서 낯선 한글을 배워야하는 아이들에게 언어와 노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글 놀이 친구가 되어주는 셈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적어준 한글을 동화책에서 숨은 그림 찾듯이 찾아내며 글을 깨우쳤다. 한글 옆에 같은 뜻의 중국어, 영어를 함께 쓰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다.
 
같은세대들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국민학교1학년국어책의 주인공은 기영이, 순이였다.
같은세대들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국민학교1학년국어책의 주인공은 기영이, 순이였다.
 

“엄마? 이거 엄마가 쓴 거야?”

나의 국민학교 1학년 공책을 본 작은아이의 반응은 대단했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전지전능한 줄 알았는데 자기 같은 삐뚤 빼뚤 글씨로 공책을 꼼꼼히 채워 나간 것이며 공책귀퉁이에 그린 알 수 없는 낙서들이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꽤나 놀라워하고 재밌어했다.

그 당시 집에 TV가 있어야 알 수 있었던 부의 상징, 디즈니만화시리즈로 꾸며진 공책표지에 대한 얘기며 공책 뒷면의 반공의식그림이 왜 필요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호기심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7살 때의 세상을 너무도 잘 기억하는 엄마에 대한 호감도가 200% 상승! 엄마의 7살 위엄을 빛내주는 1학년 국어공책이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초록색늑대괴물로 묘사되곤했던북괴의 실체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게 반전이던 시절이었다.
초록색늑대괴물로 묘사되곤했던북괴의 실체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게 반전이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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