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방학이 되면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할 생각에 걱정이 먼저 앞서기도 하지만, 한편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닐 생각을 하면 씨익 웃음이 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의 여행 프로젝트는 이미 8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4살에 중국에 와서 자란 큰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 댁과 외할머니 댁이 있는 지역을 제외한 곳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커다란 대한민국 전도를 벽에 붙여 놓고 아침, 저녁으로 알려주어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해 쉽게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래서 방학마다 한국에 들어가면 아이들과 여행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아보고, 지인들의 조언도 들어가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문화권으로 지역을 나누어 여행을 하기로 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조선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 지역을 선정하고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가기로 했다.
3박 4일 또는 4박 5일의 일정으로 국내 여행을 다녔다. 7월 초에 한국에 가면 모든 문화 유적지와 박물관이 한산하다. 한국에 있는 학교들이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유적지와 박물관마다 도슨트 제도가 도입되어 있어 사전에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무료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우리 가족만을 위해서! 중국 상하이에서 왔다고 하면 멀리서 왔다고 반가워하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재미있게 해주신다.
여행이 항상 그렇듯 고생스럽고 힘이 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직접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보던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강산과 자랑스러운 문화를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은 역사적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의 차원을 넘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고 들은 유적지가 보물 몇 호인지, 국보 몇 호 인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이어받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것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이번 방학부터는 중국을 여행할 예정이다. 중국이 워낙 넓으니, 몇 년 안에 다 둘러 볼 수 없겠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해보려 한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위해 매달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다. 목돈에서 여행 경비를 떼어 쓰려니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아예 처음부터 여행을 목적으로 적은 돈이지만 꾸준히 모으니 나중에 부담도 적고 또 다른 여행을 꿈꿀 수 있었다. 매달 가고 싶은 여행지가 적혀 있는 봉투에 조금씩이나마 돈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여행지가 적힌 봉투가 2개였지만, 지금은 5개나 된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꼭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돈이 아닌 꿈을 저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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