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부(外交部) 장관이 지난주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인도 뉴델리를 방문해 고위급 회담을 진행했다. 이는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인도 총리로 취임한 후 처음 열린 양국 간 고위급 회담이다.
워싱턴에 주재한 미국-인도 연구소 인도안보자문위원회의 란짓 굽타(Ranjit Gupta) 위원은 왕이 장관의 이번 인도 방문을 “좋은 전조”라고 하면서 “중국이 인도의 새 정부에 공개적으로 구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의 외무장관은 오랜 기간 논의해온 핵 관련 주변국 문제가 아닌 경제 협력 강화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인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오랜 기간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중국이 부상함에 따라 국경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번 왕이 장관의 인도 방문으로 중국과 인도의 관계가 긴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도는 대중(對中)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중국시장 진출이 절실하다고 판단,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인도는 제조업 영역에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인도에서 제조업 비중은 전체 경제의 15%에 불과한 데 비해 중국의 제조업 비중은 31%를 차지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은 “중국과 인도는 비교 우위의 상호보완 기회, 규모의 경제 기회, 지역 및 글로벌 문제 협력 기회 등 3가지 큰 기회 앞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국경분쟁에 대해 왕이는 “국경분쟁은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양국의 의향과 결심만 있다면 언젠간 해결방법을 찾을 것이다. 지금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양국 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한편, 시진핑 주석이 올해 안에 인도를 공식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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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중국과 인도의 관계는 말 그대로 불편한 사이였다. 티베트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면서 중국과 인도 관계는 사실상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가장 적절할 정도로 쉽게 회복될 수 없는 적대성을 내재하게 되었다. 특히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매우 복잡한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마다 다양한 언어와 인종은 물론이고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봉건시대에 있을 법한 영주의 직접통치 지역도 존재한다. 당연히 정치는 중앙집권화를 이루지 못했고 그에 따라 외교에서도 일관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중국이 인도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더라도 정작 인도가 그에 호응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국경을 접한 직접적인 안보문제를 불안정한 상태로 놔둘 수는 없었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인도의 적대국인 파키스탄과 협력관계를 수립함으로써 가까운 나라를 멀리하고 먼 나라를 가까이하는 중국 고전의 외교방식을 적용했다. 파키스탄의 주요 핵기술이 중국에서 전수된 것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질 정도로 중국과 파키스탄은 안보적으로 중요한 연대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파키스탄이 미국, 인도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매우 합리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9∙11사태 이후 미국은 아프간 전쟁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은 미국과 손을 잡는 전략적 선택을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이는 파키스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지만, 중국으로서는 파키스탄과의 협력관계 중요성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인도와 중국의 관계는 원칙적인 적대감을 배경으로 딱히 협력할 일이 없다는 현실적 상황이 지배해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 이어 인도의 경제 성장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인도의 내부 정치가 안정되고 사회가 빠르게 현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도는 마땅히 인도가 가져야 할 국제적 지위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에 보다 자신 있는 자세로 접근하였다. 중국 자체의 부상으로 아시아에서 새로운 국제체제 형성을 기대하는 중국으로서는 인도의 이러한 전향적 자세가 반가운 상황이다.
참고) 김성한, “중국의 부상과 강대국 정치”, 전략연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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