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공감 한 줄]
녹슬었지만 갈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같은 아버지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오직 오직 ‘아버지’라는 그 이름으로 세상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지고도 덤덤한 듯 표현해야 하는 아버지, 세상은 어쩌면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서 애초부터 이렇게 각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보듬고 의지해야 하는 가족들 조차도 자기의 아버지를 모든 세상사람들의 척도대로 ‘유능하다거나 무능하다’로 평가한다. 우리의 아버지는 자조 섞인 한탄으로 “내가 무능해서......”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나도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서 많이 배워 출세를 하고 싶었는데? 가난하게 태어나서 공부도 못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산 것은 절대 거저 된 것이 아니다” 하며 울컥하다가 소리를 입안으로 삼킨다.
성공을 향하여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죽도록 뛰었다. 심지어 뭔가를 얻겠다고 사람들과 다투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은 아버지에게 흰 머리카락과 어두운 시력을 선물했다. 묵직한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아버지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세상은한 마디로 만만치 않았다. 평범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소시민으로, 성실이란 이름으로 하루를 포장하여 담담하게 보낸다. 옷걸이가 없으면 옷을 걸지 못해 불편하지만 그것의 존재감은 별로 느끼지 못한다. 가족의 대화라고 해봐야 늘 아이들 공부, 영원히 부족한 것만 같은 월급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아버지는 집에서 어느새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아버지의 의무감은 더해만 갔다. 자신의 성공이 곧 가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동분서주했고 사교니 접대니 하며 감당도 하지 못하는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나를 두고 가족들은 '자기가 좋으니까 마시는 거지'라고 한다. 회사일, 사회생활만으로도 너무나 바쁜 아버지였기에 집안일에는 차츰 소원해졌고 점점 더 참여를 꺼려왔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잘 되길 바랐고 같이 하지 못해줘서 늘 미안했고 그래서 늘 조바심이 났고 안타까웠다. 담담한 아버지의 표정만큼 이런 마음은 가족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무심하다고 핀잔한다. “그런 것이 아닌데…”라고 한다. 당연히 '아버지'로서 역할을 했어야 하지만, '아버지' 이전에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조차 버거웠다.
예고 없이 닥친 말기 암, 확정된 죽음, 앞으로 길어야 4개월이란 시한부 인생,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는 다시 수많은 질문을 한다. 지금까지 누굴 위해 살아 왔던가? 나의 인생은 도대체 있기나 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질문 자체가 사치이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게 통탄스럽다. 왜 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아버지는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린다. 누구나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을 떠나야 하지만, 이렇게 먼저 훌쩍 떠난다는 사실, 끝까지 가족을 돌볼 수 없다는 사실, 변변하게 뭐 하나 남기지 못했다는 현실, 죽음을 맞이하여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죄인이 된 그 이름, 아버지……
암 덩어리는 몸을 갉아 먹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준다. 빠지는 머리카락, 퀭한 눈, 진통제 없이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는 통증, 참담한 현실로 비참해진다. 비참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가 않다. 말기 암 앞엔 희망은 없었다.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자기 정신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때 누굴 위하여 암세포가 전이 안 된 장기를 세상에 내 놓는다. 아버지는 거실 한 켠에 있는 옷걸이 같은 삶을 살았지만, 가족에겐 ‘우리 아버지’라고 불리고 싶었다. 암 간병으로 지쳐가는 가족을 위하여 아버지는 죽음 앞에서도 남겨진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 사랑을 생각한다. 그 사람이 우리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