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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꿈결에 시를 베다' 손세실리아 시인

[2015-05-29, 19:24:43] 상하이저널
인터뷰
‘시인’이 아니라 ‘시’로 태어나겠노라
<꿈결에 시를 베다>의 손세실리아 시인
 
손세실리아 시인
손세실리아 시인
 
 
“급조한 웅변이나 달변보다는 평소의 눌변으로 이웃집 여자 같고, 애인 같고, 누이 같고, 아내 같고, 엄마 같고, 이모 같은 모습으로 날아갈게요.”

이번엔 여성작가다. 주위를 지나치지 못하고 오지랖 넓게 보듬는 엄마 같은 시인이 온다. 6월 5일 <책읽는 상하이>에 초대된 손세실라아(53) 시인, 그녀는 첫 시집에 실린 ‘기차를 놓치다’와 중3 교과서에 실린 ‘곰국 끓이던 날’로 이미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2001년 「사람의 문학」 등단 후, 첫 시집 <기차를 놓치다>와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에 이어 지난해 <꿈결에 시를 베다> 두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4년째 제주에서 ‘시집카페’를 운영 중인 그녀, 두번째 시집은 제주에서 쓴 작품들이다. 시인보다 먼저 상하이에 도착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손세실리아 시인님이 ‘글 쓰는 일은 도둑처럼 찾아온 황홀한 업'이라고 한 문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일, 시를 쓰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숨통(목숨)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나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실감케 해주거든요. ‘황홀’ 뒤에 ‘업’을 붙인 건 글 쓰는 과정의 압축적 상징입니다. 활자화된 시와의 조우는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한 일이지만 정작 창작과정은 퇴고에서 탈고에 이르는 동안 무수한 절망과 고통과 극기를 감내해야 하는 작업인지라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이를테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진 숙명이란 뜻입니다.
 
시인되기로 결심(?)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시가 어떻게 왔나요?

어느 지면에 “감히 시인을 꿈꿔본 적이 없다”는 고백을 했던 적이 있는데요. 진심입니다. 시가 뭔지 몰랐거든요. 교과서를 통해 만난 시가 전부였으니 그럴 수밖에요. 돌아보면 나 자신이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기보다는 우여곡절의 삶이 시에게로 나를 데려다 놓은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거기엔 활자중독증처럼 닥치는 대로 읽은 책과 누구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할 사연을 독백하듯 기록하던 습관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테고요.
 
제주에서 북카페 ‘시인의 집’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왜 제주도를 선택했나요?

엄밀히 말해 시집카페에요. 벽면 서가에 시집만 꽂아뒀거든요. 각박한 일상을 탈출해 섬 여정에 든 여행자들에게 ‘시’라는 뜻밖의 선물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서죠. 태어나 처음으로 한번은 꼭 살아보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그곳이 바로 제주였고, 지구별에서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섬마을에 살게 됐으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또 있을까 싶어 나에게로 온 이 엄청난 축복을 원하는 이들도 누릴 수 있게끔 공간 일부를 카페로 개방했고요.
 
앞으로 계획, 목표는 무엇인지.

지금보다 더 외롭고, 더 슬프고,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럽고, 더 가난해질지라도, 세상을 뜨겁고 사무치게 사랑하는 일에 두려움 없기를.
 
상하이 교민들에게 한 말씀.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시인이 아니라 시로 태어나야겠노라고. 이유인즉, 시인인 나는 밥벌이와 가사와 창작을 병행하느라 과부하가 걸려 심리적 중압감에 시달리는 데 반해 품 안을 벗어난 시는 저 홀로 바람 구두를 신고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게 한없이 부러워서지요. 식당 화장실 문에 붙여지기도 하고, 결혼한 친구의 집들이 선물이 되고, 대학교수의 강의 자료가 되기도, 노래가 되기도, 그림이 되기도 하니 말예요.

어디 그뿐인가요? 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전쟁국가에도 소설가 이시백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르테(신기루)가 가물거리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 말고는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고비, 몽골에도 가 있으니…. 질투가 날 밖에요. 그런데, 이번 상하이저널과 함께하는 <책읽는 상하이>의 초대를 받게 되니 시에게 메롱~하는 기분과 함께 그간의 부러움이 순식간에 누그러졌습니다.

시만 불러준 게 아니라 시인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상하이 교민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급조한 웅변이나 달변보다는 평소의 눌변으로 이웃집 여자 같고, 애인 같고, 누이 같고, 아내 같고, 엄마 같고, 이모 같은 모습으로 날아갈게요.
 
▷고수미 기자
 
책사진설명: 손세실리아 (지은이) | 실천문학사 | 2014-10-13
책사진설명: 손세실리아 (지은이) | 실천문학사 | 2014-10-13
 
 
새벽, 영등포역//지하도에 내몰린 딱한 사내와/쫓겨난 비렁뱅이 계집이 눈 맞았는데/기어들어 녹슨 나사 조였다 풀/지상의 쪽방 한 칸 없구나/달뜨고 애태우다/제풀에 지쳐 잠든 사내 품에/갈라지고 엉킨 염색모 파묻은/계집도 따라 잠이 들고//살 한 점 섞지 않고도/이불이 되어 포개지는/완벽한 체위를 훔쳐보다가/첫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기차를 놓치다' 중)

하루 반나절을 내리 고았으나/틉틉한 국물이 우러나지 않아/단골 정육점에 물어보니/물어보나마나 암소란다/새끼 몇 배 낳아 젖 빨리다 보니/몸피는 밭아 야위고 육질은 질겨져/고기 값이 황소 절반밖에 안되고
뼈도 구멍이 숭숭 뚫려 우러날 게 없단다/그랬구나 평생 장승처럼 눕지도 않고 피붙이 지켜온 어머니/저렇듯 온존하게 한 생을/나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 온 거였구나/그 불면의 충혈된 동공까지도 나 쪼아먹고 살았구나
(‘곰국 끓이던 날’ 중)
 

<상하이저널과 함께 하는 책읽는 상하이>

음악이 있는 문학 토크
손세실리아 시인 상하이 강연

6월 5일(금) 오후 7시

▶ 장소: 윤아르떼(宜山路2016号合川大厦3楼F室(허촨루역 1번출구))
▶ 도서판매: <꿈결에 시를 베다> 50元
▶ 강연 및 도서구입 문의: 021-6208-9002
▶ 참여신청: www.shanghaibang.com → ‘책읽는 상하이’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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