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여름, 푸동공항이었다. 배고프다는 아이의 말에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들고 나왔다. 그런데 아이가 온데 간데 보이질 않았다. 방금 전 한국으로 떠나는 외할머니에게 씩씩하게 인사하고 돌아선 뒤 “엄마, 우리 뭐할까? 이층버스 타러 갈까”라며 유쾌하게 말했던 아이였다. 염려와 달리 외할머니와 태연하게 작별인사를 나눴던 터라 안심했는데…
한참을 두리번 거리고 보니, 아이가 편의점 문 뒤에 숨어 있다. 다가가 보니 아이는 눈과 코가 시뻘개 지도록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외할머니와의 이별 앞에 태연한 척 하더니… 아이는 불과 다섯 살에 불과한데 이별 앞에 눈물을보여선 안되는 불문율
을 벌써 알아버린 걸까? 숨어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장 가운데서 치솟아 오른 무언가 목울대를 건드리더니 두 눈으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두 모자는 그렇게 공항 로비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의 장소는 공항”이라더니… 그 말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손자 사랑이 지극한 외할머니는 아이의 여름방학에 중국에 오셔서 한 달을 머물다 가셨다. 한달 동안 아이는 외할머니 품에서 책을 읽고, 잠이 들고, 외할머니 손을 잡고 이곳 저곳을 놀러 다니고, 세상 거칠 것 없이 마음껏 까불고, 장난치고… 마치 세상이 제 것인 양 그렇게 지냈다.
엄마는 손자와의 헤어짐을 며칠 전부터 염려한 터라, 공항 입국장에서 서둘러 들어가셨다. 곁에서 한량없는 사랑을 주던 이의 떠남이 가져다 주는 당혹함을 다섯 살 사내아이는 어떻게 감당해야할 줄 몰라했다.
아이를 겨우 달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빈 집, 외할머니가 빠져나간 썰물의 자리가 쓰나미급 공허함으로 멀어 닥친 것이다. 급기야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한국에 돌아간 엄마 또한 지독한 ‘후유증’을 앓으셨다. 엄마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중국에 다시는 못가겠다” 하셨다.
그 후 네 번의 여름방학을 거치면서 4번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회자정리’의 법칙을 깨우쳐 가는 지,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에 자못 의연해져 갔다. 또 다시 여름방학, 다섯 번째 만남과 이별을 하게 되겠지만 이제 큰 두려움은 없다. 중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지도 제법 세월이 쌓여 가지만, 일 년에 한번은 꼭 나의 뿌리에 충분한 영양분과 빛을 흡수할 수 있는 토양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또 일년을 버텨가는 힘을 얻어오는 것이다. 한량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그 힘은 나에게로, 아이에게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별과정을 거치고 온 것이지, 우리는 어쩌면 ‘이별 뒤의 만남’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 이 만남을 보다 소중하고 맑은 인연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가 될 런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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