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쑤성 성회성시(省会城市)인 난징은 아름다운 풍경으로도 유명하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더욱 깊은 도시다. 난징은 시안, 베이징, 루어양(洛阳), 카이펑(河南开封) 그리고 항저우와 함께 중국 육대고도로 불린다. 삼국시대 오(吴)나라부터 시작해서 진(晋), 송(宋), 제(齐), 양(梁), 진(陈) 여섯 왕조와 더불어 명나라, 그리고 청나라 말기의 태평천국과 손중산의 중화민국 등 다양한 나라의 수도가 바로 난징이다. 그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다.
난징시를 진입하면 제일 눈에 띄는 건 오동나무로 줄을 지은 가로수다. 중화민국 시절 총통인 장제스가 오동나무를 특히 좋아한 자신의 부인 송메이링을 위해 난징의 모든 나무를 오동나무로 바꿔 심었다는 설이 있다.
명성장(明城墙)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는 응천(应天)이라 수도를 명하고 약 20년 간 도시내외에 성벽을 많이 지었다. 현재 명성장이라 불리는 난징의 성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원으로 기록된다. 명성장은 명나라 이전 어느 시대와 비교해도 자신만의 독특함이 엿보인다. 그 당시 사각형으로 지은 성벽들을 뒤로하고 안에서 밖으로 둘러싸는 환(环)의 형식으로 만들었다. 그 시대로선 매우 신선한 건축설계였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현재 사람들의 감탄을 산다. 또한 60키로미터를 넘는 명성장의 외곽은 군사적으로 많은 이점이 있다. 보물을 모으는 구멍이라는 뜻의 취보동(聚宝洞)의 거대입구는 군사들을 숨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 군사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전투자재를 보관하기도 한다. 수많은 명성장중 대성(台城)이 가장 유명하다. 대성안에는 현무호(玄武湖), 바깥에는 계명사가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대성(台城)주소:玄武区解放门8号(近古鸡鸣寺)
•전화번호: 025)8321-7200
•입장표: 성인 30위안 학생할인 가능 (학생증 필수)
총통부(总统府)
명나라때는 한왕부(汉王府), 청나라때는 양강총독서(两江总督署), 청나라 강희제•건륭제가 강남에 내려왔을 땐 행궁(行宫)으로 쓰였다. 또한 1853년 태평천국 군사가 난징을 점령했을 때 홍수전(洪秀全)이 그 자리에 태평천국의 천왕부(天王府)를 건설했다가 청나라 군사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후 1870년에 비로소 현재의 총통부가 세워졌다.
총통부는 중국 최대의 근대사 박물관이다. 약 160년 가량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40년의 아편전쟁부터 시작하여 1949년 해방된 난징은 수많은 주요사건의 발원지이자 중국정치와 군사의 요지여서 중국 근대사의 주요 유적지라 할 수 있다.
1911년 10월 신해혁명이 일어난 후 1912년 1월 1일 손중산(孙中山, 쑨원)은 총통부에서 중화민국임시대통령 취임을 선포했다. 그리하여 중국 역사상 첫번째 공화체제의 중화민국임시정부가 생겼다. 손중산을 이어 원세개(袁世凯),여원홍(黎元洪)와 강개석(蒋介石)등 인물들이 중화민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총통부는 크게 대당(大堂), 자초루(子超楼)와 후원(煦园)으로 나뉜다. 대당은 입구에서 바라본 건물이며 문 앞에 크게 천하위공(天下为公)이라 써졌다. 천하위공이란 신해혁명을 이끈 손중산의 정치신념으로써 ‘중앙집권인 왕권을 반대하고 만천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며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초루는 대통령의 집무실이다. 자초루에는 장제스와 이종인의 집무실이 남아있다. 명나라 초기에는 한왕부화원이었고 후에 명나라 황제의 이름 중 한 글자를 따 후원이라 지었다. 후원은 호수 가운데 있는 부계주(배모양 정각)가 중심이 되어 물과 건축물의 조화를 잘 보여준다.
•주소: 玄武区长江路292号
•개관일: 개관 날짜가 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확인은 필수
3/1-10/31 7:30-18:00, 11/1-11/30 7:30-17:30, 12/1-2/28(29) 8:00-17:00
•입장표: 성인 40위안 학생할인 20위안
난징대학살기념관(南京大屠杀纪念馆)
1937년 12월13일 난징이 일본군에게 침략을 당했다. 그 후 약 6주 동안 일본군의 끔찍한 악행들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강간이나 약탈, 방화는 물론,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마구잡이 식으로 참혹하게 살해했다. 이로 인한 피해자만 약 30만명. 이 난징대학살을 추모하기 위해 1985년 대학살기념관을 개관했다.
개관 입구부터 줄지은 피해자의 동상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장면들을 재연한다.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다. 또한 기념관 앞 각 나라의 언어로 새긴 ‘조난자 30만’이란 글자로 가득 채운 검은색 장벽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기념관의 모든 건물과 건축물은 모두 검은색으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요기념관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어둠 속에서 대학살 조난자의 명단과 역사자료들을 전시한다. 동영상으로 피해자들의 인터뷰, 그 당시의 참혹한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반복적으로 틀어준다. 또한 일본에 대한 비판을 담은 그 시대의 미국 뉴욕타임즈 기사나 당시 난징의 상황을 보여주는 글을 읽으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 중 특히 위안부에 대해 나오는 부분을 읽으면서 현재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주요기념관을 나오면 만인갱(万人坑)이라는 곳이 나온다. 말 그대로 당시 피해자들의 실제 시신의 발굴장소다. 1998년 발굴 당시 약 40평방미터인 작은 땅에서 208구의 시신이 발굴되었다. 수많은 해골들이 서로 뒤얽힌 모습은 믿기 힘들다. 만인갱의 출구에는 수많은 촛불들만이 그들을 밝히고 추모하고 있다.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중국뿐만 아니라 특히 일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역사를 직접 보고 다시금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주소: 建邺区水西门大街418号(近云锦路)
•전화번호: 025)8661-2230
•입장표: 무료
•개방시간: 매주 월요일 외 8:30-16:30
중국고대왕조부터 근대까지 중국역사에 중요한 유적지로 남은 난징. 진짜 중국을 알고 느끼고 싶다면 살아있는 역사도시 난징을 방문하는 건 어떨까?
고등부 학생기자 김혜민(건평중학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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