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이르긴 하지만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2주 가량 한국에 다녀왔다. 부모님과 함께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깨끗한 공기도 마음껏 마셨다. 친정 부모님 댁에서는 삼시 세끼 밥 할 걱정도 안하고 늦게까지 자는 여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수다로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그간의 피곤을 완전히 비우고 다시 기운차게 상하이 생활을 계획하며 돌아왔다.
방학을 앞두고 몇 주 전부터 자녀들의 긴 방학 시간을 어떻게 짤지, 만나는 학부모마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국제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으니 영어는 기본이요, 사는 곳이 중국이니 중국어에, 한국 사람이니 국어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한국에선 수학이 중요하다 했으니 수학도 쫓아가야 하고,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예체능 - 수영, 태권도, 미술, 피아노 등등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학 입시를 바라보는 고학년들이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으로 '이 방학을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 다짐하며 하루 종일 공부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마땅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부터 짜여진 계획에서 자유롭지는 않아보였다. 나는 내심 방학하자마자 한국에 가니 그냥 돌아와서 하게되면 하고 말면 말지라는 심정으로 한발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나의 이런 태도는 참 한심한 부모나 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한민국 교육 1번지에 사는 대치동 아줌마는 우리 아이에게 '초등 5학년이면 중학 과정 한번 훑어야지'하고 당연한 듯 말했다. 영어는 주니어 토플을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할 시기인데, 중 2때 만점을 목표로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우리 아이 친구들은 수학 경시대회에 부지런히 출전하고 있었고, 책도 얼마나 많이 읽는지 놀라웠다. 논술의 수준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또 영어는 국제학교를 다니는 우리 아이보다 글쓰기 수준이 높아 보였다.
또 내가 방문했던 시기가 중고생들 기말고사 기간이라며 중2 부모인 우리 언니는 이때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고, 그래서 나는 하나밖에 없는 조카 얼굴도 알현하지 못했다. 상하이에 사는 학부모 위에 날고 있는 한국 엄마들이었다.
처음에 이런 말을 들을 땐 겁이 나기도 했다. 나만 바보처럼 이러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활을 살펴보니 바로 '이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학습은 學(학)이 30프로 習(습)이 70프로여야 한다는 이론, 또한 이 70프로의 習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의 學 30프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바쁜 삶 속에서 이들은 20프로의 習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이 다른 나라 아이들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배경지식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사람이 재산이라고, 우리는 교육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한다. 물론 이 말에는 한 치의 의심이 없다. 나는 그저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곳이 교육이 아니라 학원이라는 것, 그리고 기준 이상의 정보의 양이 많다는 것에 그 위험을 느낀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나면 절대 책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아이들의 손에는 스마트 폰이 있으니까. 아이들은 머릿 속에 정보를 가득 채우고 와서 다시 또 자질구레한 정보를 본다. 정보의 입력만 계속된다.
상하이에 돌아와서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3일을 뒹굴거렸다. 멍청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아무생각 없이 웃다가, 자다가 일어나서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기도 하고 밥 때가 되면 밥을 주지 않는 엄마를 탓하지도 않고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다. 우리에겐 비우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 학기를 잘 달려왔으니 말이다. 주변에 현혹되지 말고 내 믿음대로 잘해야지 다잡아 본다.
느릅나무(sunman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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