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조창완 기자] 요즘 중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는 작품이 있다. 사람들은 최근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탄 지이장커(駕樟柯)감독의 <산샤하오런(三峽好人, 영어명 still life)>을 떠올리겠지만, 그 주인공은 펑샤오캉(馮小剛) 감독의 <야연(夜宴)>이다. <산샤하오런>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하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펑샤오캉은 중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중국내 지명도는 장이모나 첸카이거에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쳐도 베니스영화제의 최고상을 수상한 작품이 이렇게 밀리는 것은 의아하다.
사실 이런 느낌은 지아장커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장위앤 등도 절감했던 이야기일 것이고, 첸 카이거도 84년 로카르노나 86년 몬트리올에서의 수상 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은 중국의 열악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아장커의 영화는 바로 중국의 가장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인 산샤(三峽)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올해 산샤는 영화로 달구어지기 전에 너무도 뜨거웠다. 산샤의 중심도시 충칭(重慶)은 한 달 가량 섭씨 40도 이상이 계속됐고, 심지어는 44.5도를 넘어서기도 했다.
거기에 비까지 오지 않으면서 사상 최악의 가뭄이 왔다. 가뭄은 산샤댐 상류의 수자원 부족으로 이어졌고, 충칭 인근의 창지앙(長江)은 오염띠가 퍼지면서 재앙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물론 산샤와 가뭄을 엮기에는 쉽지 않다. 사실 지난해를 비롯해 몇 년은 극심한 집중강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산샤는 하늘로 인해 적지 않은 고통에 빠져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픈 곳들
기자는 연례행사처럼 산샤를 취재했는데 올해만 아직 그곳에 가지 못했다. 댐이 생기기 전에 뒤숭숭한 분위기와 잠기기 전에 마지막 용주 축제가 열리던 굴원의 고향 즈구이 풍경, 물이 서서히 차오르던 강 주변의 분위기는 카메라를 가진 이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었다. 120만명의 건설 이민은 고향에 뼈를 묻을 것으로 생각하는 중국인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이들은 그들 조상의 묘를 다양한 방식으로 산위로 올린 후 후난, 안후이, 지앙시로 떠나야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고향은 수년간 떠나 있는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둘씩 돌아온다. 물론 옛 도시 대신에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중국 역사상 최대 공사가 이뤄졌던 산샤는 외지인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산샤는 인구가 많았던 쓰촨 사람들이 남쪽으로 향할 때,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인 일반선을 타고 따라가던 길이다. 물론 두보나 이백 같은 이들도 이 길로 강남으로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지아장커가 <산샤하오런>에서 시선을 둔 인물은 이전 영화들과 같이 세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군상들이었다. 영화는 두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묶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광부 한싼밍(韓三明)이 산시성의 한 도시인 펀양(汾陽)에서 16년전에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아 산샤의 중심도시중 하나인 펑지에(奉節)로 찾은 이야기다.
한은 결혼 후 아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는데, 공안국(경찰)에서 갑자기 찾아와 아내가 불법거주자라며 데리고가 소식이 두절된 상태였다. 결국 그는 16년만에 공안국의 서류에서 그녀의 고향을 찾아내 펑지에에 온 것이다. 그들이 창지앙에 만들어진 신도시에서 재회하고 다시 합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이야기는 타이위앤(太原)에서 펑지에로 온 간호사 선홍(沈紅)의 이야기다. 그녀 역시 2년 전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서 이곳에 왔다. 그들은 산샤 댐 앞에서 재회한다. 그리고 둘은 같이 춤을 춘 후 이별하고 이혼을 결정한다.
하지만 지아장커의 소회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2천 역사의 도시는 이제 2년 안에 영원히 물속으로 가라앉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 현장에서 사라져가는 도시와 파괴, 폭발 등의 먼지를 담았다고 한다.
지아장커는 이 영화와 동시에 <동(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같이 촬영했다. 주인공 한싼밍은 그의 사촌동생으로 <플랫홈>에서 광부였고, <세계>에서 베이징의 노동자 역할을 했다. 지아장커 표 여배우라고 할 수 있는 짜오타오(趙濤)도 그와 함께 했다.
반갑지 많은 않은 베니스영화제 수상
사실 지아장커의 영화는 어느 디브이디(DVD)점에서도 쉽게 사볼 수 있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중국의 낙후한 모습과 침울한 미래관을 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등에서 쉽게 이야기되는 영화는 아니다. 심지어는 수상식장에서 중국기자에게 "당신은 왜 중국 청년들의 낙후된 모습만 담는가"라는 핀잔섞인 질문까지 받아야 했다.
<플랫홈>에서는 되지도 않는 악단을 이끌고, 문선단을 이끌면서 개인적으로 팝에 빠진 부유하는 세대를 그렸고, <임소요>에서는 참여할 수 없는 현대화의 굴레 앞에서 좌절하는 젊은 이들을 그렸다. 또 <세계>에서는 한 걸음으로 도쿄와 파리를 오갈 수 있지만 그들을 얽매는 현실과 관계의 끈을 그렸다.
이렇듯 지아장커의 앵글에 잡힌 중국 청년의 모습은 배경 만큼이나 답답하고 암울했다. 그런 이유일까. 10일 지아장커의 수상소식이 전해진 후 중국 언론은 이상하리 만큼 조용했다. 장쩌민 전집의 출간을 한달 가량 메인화면에 두었고, 대장정 승리 70년을 보름째 뉴스 메인란에 걸어둔 중국 포털 사이트 <신랑왕>에서 이 소식은 몇시간 만에 서브면으로 내려왔다.
실제로 영화는 만남과 이별속에서 부유하는 외지인들의 군상을 담고 있지만, 여전히 옛 집을 버리지 못하는 여관 주인, 이주대책을 거부하고 옛집을 고수하는 노인 등 여전히 상존하는 산샤 이민 문제들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