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며칠 전 중국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한 도시. 두만강변에 인접한 농가와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셋집에 이른 새벽 공안(公安·경찰)이 들이닥쳤다. 불시 호구(戶口)조사였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탈북자 색출’이었다. 미처 몸을 빼지 못한 탈북자 서너 명이 끌려 나왔다. 수년간 식당 일을 하며 3국행을 준비하던 북한여성 A씨도 있었다. A씨 등은 옌지(延吉)에서 투먼(圖們) 가는 길목에 있는 탈북자수용소(속칭 핑크하우스)에 일시 수용됐다. 이들은 곧 투먼 해관(세관)을 거쳐 강제로 북송될 예정이다.최근 두만강과 압록강 일대에 중국 당국의 탈북자 색출 작업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현지의 한 인사는 “외부에서 탈북자 관련 소식이 들릴 때마다 반드시 ‘행사(일제조사)’가 있다”며 “요즘은 일부 외국인들에 대한 이메일 검열도 수시로 이뤄진다”고 했다. 그는 “올 여름 북한의 수해로 탈북자가 급증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이 ‘탈북자 정리’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탈북자를 지원하는 NGO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탈북자들의 ‘제3국행’ 희망도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고 한다. 탈북 현상이 10년을 넘어서면서 한국 이외에 미국행도 가능해졌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한 이들에겐 먼나라 얘기일 뿐이다. 요행히 북중 국경은 건넜지만, ‘탈북 이후’가 더 걱정이다.
지난 24일 오전 랴오닝성 선양(瀋陽)시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탈북자 이근식(가명)씨의 몸에선 술 냄새가 났다. 올 6월 국경을 넘어 선양까지 들어와 노숙을 하면서, 식당에서 내놓은 술병에 남은 술을 모아 마시지 않고는 쌀쌀한 날씨를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운 좋은 탈북자들은 미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건 고사하고 굶어 죽지나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양의 한 소식통은 “탈북을 했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탈북자 수용시설이 만원이고, 정착금이 대폭 줄어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며 “이 때문에 10년 전 대기근 때처럼 대책 없는 탈북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탈북자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직접 보호하는 방식 대신, 비밀리에 북한 주민들과 연락하면서 지원만 해주는 쪽이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발각돼도 처벌이 다소 가볍다는 것이다. 지원자들은 정기적으로 중국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에게 도움을 주고 다시 북한으로 들여 보낸다. 일부에선 북한주민들에게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성경을 베끼게 하고, ‘숙제’를 해오면 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위험천만하기는 마찬가지. 이런 일을 하다가 당국에 적발돼 벌금 물고 추방된 사람이 여럿이라고 현지 인사들은 전했다.
옌볜의 한 종교인은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하지만, 오래 지탱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대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