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중국 최고 갑부 황광위의 성공비결
“30%의 확신만 있으면 나는 바로 실행한다… 나는 일하면서 수정하고 보완하는 걸 좋아한다…” “중요한 것은 감(感)이다…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할 필요는 없다. 목표가 너무 명확하면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 말을 누가 ‘만만디(慢慢的)’한 중국인이 한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러나 이 말은 전 세계 CEO들의 필독지(誌) 미 포브스(Forbes)가 작년 3월에 전 세계 부호 명단에 처음으로 올린 중국인 황광위(黃光裕·사진)가 한 말이다.
황광위는 도대체 누구인가. 포브스는 황광위를 ‘붉은 자본가’로 불리는 룽즈젠(榮智健) 중신타이푸(中信泰富·CITIC Pacific) 회장에 이어 중국인으로서는 2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중국 내 자체 평가로는 황광위가 2004년에 이미 부호 순위 1위에 올랐으며, 당시 나이 불과 서른다섯의 새파란 젊은이라는 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룽즈젠 같은 반관반민(半官半民)형 기업인이 아니라, 순수한 개인자본으로 가전제품 도·소매를 주로 하는 유통업체 궈메이(國美)를 차려 ‘차이나 드림’을 이루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월마트의 샘 월튼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가 지금까지 이룬 꿈과, 앞으로 이뤄갈 꿈을 그려놓았다.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신문의 하나인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 기자 출신인 저자 우아룬(吳阿倫)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산터우(汕頭) 부근 인구 300명도 안 되는 ‘깡촌’ 출신의 황광위가 열일곱살인 1985년에 집을 떠나 20년 만에 어떻게 중국 최고 갑부가 됐는지를 열심히 추적했다. 우아룬이 내린 황광위의 성공 비결은 너무나도 평범한 것이다. “큰 꿈과 일밖에 모르는 부지런함”이라는 것이다. 마치 산터우 출신 화교 최대 부호 리자청(李嘉誠)이
그렇듯이….
“황광위는 사무실에 ‘상자무역, 상융공생(商者無域 相融共生)’이라는 글귀를 걸어놓았다. “상인들에게는 자신의 영역이라는 게 따로 없다. 상인들이란 서로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란 말, 어딘지 조선시대 때 개성상인 임상옥이 했다는 “장사란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젊은 황광위가 갑자기 터득한 말일까. 중국의 고대국가 은의 별칭이 상(商)이며, 중국인의 별칭이 ‘상인(商人)’이 아닌가. 고교를 중퇴하고 고향을 떠나 내몽고(內蒙古)로, 베이징(北京)으로 떠돌면서 옷 장사로 상인 생활을 시작한 황광위의 기발한 상술(商術)들은 그의 핏속에 감춰져 있다가 되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중봉(中縫)광고’란 한국이나 일본에 없는 광고기법이다. 신문의 가운데 접히는 선이 있는 흰 공백에 광고를 싼 가격에 인쇄해달라고 신문사를 조른 것이 황광위다. 가격은 싸지만 광고효과는 만점이었다.
결국은 정보전(情報戰)이다. 황광위는 주로 중국 남부에서 북부로 흐르는 가전제품의 가격정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미 신 제품이 생산돼서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가전제품의 품목들은 엄청나게 싼 가격에 미리 처분하고, 신 제품은 어디보다도 빨리 구해서 진열해놓았다. 황광위는 또한 궈메이의 관리자들 명함 뒤에 ‘염정승낙(廉政承諾)’이라는 네 글자를 박아서 갖고 다니게 했다. “우리는 뇌물이나 리베이트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황광위가 어느 날 갑자기 망할 수도 있는 게 요즘 중국이다. 그러나 핏속에 상인 기질을 타고난 제2, 제3의 황광위가 뒤를 이을 것이며, 그들이 어떤 인간인지, 이 책은 짐작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