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아시아 문예술의 특징은 유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아시아 대부분이 농경에 기반한 문화를 일구었고 문자와 종교를 공유한 데에 기인한다. 농경을 기반으로 한 문화교류는 아시아인의 의식주에 유사한 풍속을 만들었으며, 한자에 기반 한 문자는 지식기반의 유사성을 동반했다. 불교와 유교의 전래는 수많은 지역 토착신앙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의 사상과 풍속에 큰 영향을 미쳐 아시아 전역이 유사한 세계관을 갖도록 했다. 아시아 각국이 수 천년 독자적인 역사와 현저하게 다른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정서적 유대감이나 문화적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이유이다.
전라남도는 한반도의 서남에 위치해 과거 중국과 한반도 항로를 잇는 중간거점으로 동아시아 해양문명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완도의 청해진이나 강진에 위치한 청자도요지는 남도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적극적인 국제교역의 중심으로서 활발하고 국제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수묵(水墨)은 아시아를 관통하는 문화적 공용어인 동시에 대표적인 예술과 지식의 상징이었다. 불과 100년전 만 해도 조선의 선비와 화인들이 1500년 전 당송시대 지식인 예술가의 그림을 임모하면서 필력을 익히는 일은 당연한 수학과정으로 여겨지곤 했다. 수묵은 단지 예술이 아니라 지식인들의 학문과 교양의 일부로 인식됐다.
그렇게 1500여년이상 긴 호흡을 이어왔던 동아시아 수묵은 근대 이후 아시아 근현대 역사와 다르지 않은 수모와 부침을 겪어왔다. 근대열강은 종교와 학문, 신식 교육을 앞세워 아시아 전역을 문화적으로 종속하고 과학 지식이 문화의 우위에 작용해 아시아 전통문화와 고유한 특성은 사라지거나 서구문화와 더불어 일반화 되기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도 수묵水墨은 봉건시대 지식인들의 고답적인 유물 정도로 여겨져 매우 급속하게 단절됐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더욱 철저하게 과거 봉건시대와 단절돼 수묵은 더 이상 지식인들의 교양이 아니라 철저하게 배척당해야 할 과거로 인식되기도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 수묵은 오직 소수예술가들에게만 의미 있는 예술로 자리를 옮겼다. 대한민국도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100년 사이 대한민국은 산업과 경제 문화에서 놀랍도록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성장의 그늘에서 사라지거나 잊혀진 전통문화 또한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공교육에서 한자가 사라지고 불과 30여년 사이 수묵과 서예는 대중과는 거의 유리돼 더 이상 세대가 공유하는 전통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문화의 유입 경로였던 전라남도는 여전히 전통문화와 예술의 보고, <예향>으로 불려왔으며 여전히 타 지역에 비해 문화적 요인과 가능성이 건재하다. 전라남도에서 국제적인 수묵비엔날레를 개최한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 부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남에 깊이 뿌리를 둔 수묵예술이 아시아를 관통하는 가치로서 발전 가능성을 새롭게 확인하고, 아시아 미술의 세계적 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전라남도에서는 수년간의 준비 끝에 지난해 2017전남국제수묵프레비엔날레를 개최해 <수묵>의 동시대 예술로서의 건재함과 가능성을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아울러 성공적인 2018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출발을 위해 상하이 홍콩 홍보전시를 준비했다.
<수묵, 동방수묵지몽(東方水墨之夢)>전시는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으며, 그 책무 또한 막중하다. <수묵, 동방수묵지몽>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는 총 30분이다. 지난해 2017전남국제수묵 프레비엔날레에 참여했던 100여명의 예술가 중 오랜 시간 수묵의 부침을 온몸으로 견디어 내면의 깊이와 전통수묵에 충실한 은둔자와도 같은 원로예술가부터 전통에 충실하되 새로운 세계를 창작해 세계가 주목하는 다양한 이력을 가진 예술가, 그리고 창의적인 시각과 힘찬 열정으로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예술의 현장으로 기꺼이 뛰어들 모든 준비가 돼있는 대한민국의 예술가들이다.
‘수묵’이 아시아를 하나로 잇는 공통의 문화이자 예술언어로 다시 작동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꿈, <수묵, 동방수묵지몽>이다.
이승미
한국수묵 해외 순회전시 큐레이터
행촌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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