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직장 다니느라 살림에 별 관심이 없어서 외식도 잦았고 반찬도 사다 먹는 경우가 많았다. 4년 전 처음 상해에 왔을 때, 게다가 모든 것이 포서보다 불편한 포동에 자리 잡았을 때, 제일 걱정인 것이 김치였다. 배추가 달라서 담가도 맛이 없다는 말을 위안 삼으며 김치 파는 포서에 전화를 하면 몇 백 원 어치를 시켜야 배달을 해준단다. 할 수 없이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액수 채우느라 한보따리를 시켜야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을 보니 '포동 지역, 김치 무료로 드립니다'하는 문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중요한 정보를 입수나 한 듯이 얼른 옆집에 사는 아무개 엄마에게 광고지를 들고 가 보이며 "빨리 전화해 보자"고 했다. 그러나 흥분한 나의 어투가 무색하게도 그녀는 말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을 걸요."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새로 생긴 교회에서 낸 광고였다.
한 번은 일하는 아줌마가 20Kg짜리 쌀봉지 안에서 이상한 표딱지를 꺼내 보이며 이게 뭐냐고 했다. 말은 하지만 한자를 못 읽는 아줌마와 말은 서툴러도 한자는 잘 읽는 나는 서로 도우며 더듬더듬 해석을 해보니 20Kg짜리 쌀 한 봉지를 더 준다는 행운의 당첨권이었다. 아줌마는 몹시 기뻐했으나 이미 중국 생활을 알 만큼 안 나는 '공짜쌀'의 표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인심이나 쓰자' 싶어서 "너 가져라" 했더니 웃음을 귀에 걸고 퇴근을 했다. 이튿날 "쌀 주더냐?"고 물었더니 쌀 산 슈퍼에서는 자기네와는 무관한 것이니 쌀회사에 연락을 하라고 하더란다. 그날 아줌마는 지방 어디에 있는 쌀회사에 전화 하느라고 전화통에 불이 났다. 몇 번을 언성을 높이다가 결국 쌀회사로 와서 바꾸러 가라고 하더란다. 쌀값보다 차비가 더 나오겠다고 말리고 말았다.
지난 여름 방학에 잘 아는 한 이웃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학교에서 어린이날에 무료 영화표를 주어 마침 아이들 좋아할 영화가 상영 중이니 같이 가잔다. 좋아라 따라 나섰건만 매표소에서부터 우리의 기분은 상하고 말았다. 표 파는 복무원이 어딘가 전화를 해서는 이러이러한 입장권을 가지고 왔는데 무료로 입장시켜도 되는가를 묻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하는 조조 프로에는 그 표를 사용할 수 없단다. 조조는 이미 할인이 된 가격이기 때문이란다. 오후에 와도 할인을 해주는 것이지 무료는 아니란다. 그 표에는 분명히 '무료'라고 쓰여 있는 데도 말이다. 화가 난 그 얌전한 이웃은 급기야 복무원 얼굴에 표를 던져 버리고야 말았다. 그럼 그렇지. 중국에 공짜가 어딨나?
내가 중국에 와서 이해 못할 일 중의 하나는 음식점에 차 들어가면 주차료부터 내고 들어가서 그 집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열쇠 받아서 주차해주기는커녕 자기 가게에 들어가 매상을 올려주어도 주차비는 내야 한다는 것인가? 또 친절하게 나눠준 물수건을 그냥 습관적으로 뜯어서 손등이라도 한번 닦건만 그 하나하나가 요금에 계산되는 것을 알고는 물수건도 생각해보고 써야 할 지경이다.
살다 보면 나에게도 크진 않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행운이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은 크진 않아도 금전 이상의 기쁨을 주기에 행복했다. 그러나 중국에 와서 나는 더 이상 '무료'니 '서비스'니 하는 행운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국에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포동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