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영복 | 그림 김세현 | 돌베개 | 2008.07.30
이 책은 선생께서 1966년 초봄 아는 지인들과 나선 서오릉 소풍 길에 우연히 만나게 된 여섯 명의 초등학생들과의 2년여에 걸친 추억을 회상한 글이다. 길지 않은 글인데, 읽는 내내 마치 동화를 읽고 있는 듯 얼굴에 봄빛처럼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어느새 온통 따스한 햇빛으로 가득 차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책 말미에 이 글이 선생께서 68년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육군교도소에 사형수로 수감된 상태에서 재생휴지에 써서 남긴 회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진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억울한 죽음이라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생께서는 가난한 여섯 꼬마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넘치는 감정 없이, 절제된 표현으로 담담하고 아름답게 재생 종이 위에 남긴다. 죽음을 마주한 순간, 왜 하필이면 가난한 여섯 어린이들과의 길지 않았던 추억이었을까? 이 책은 다음과 같은 글로 끝난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살게 될지 죽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순간에, 순수하고 따뜻했던 시간들을 회상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구원하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시종일관 인간을 사랑했고, 사람 간 관계를 소중히 했던 선생님처럼, 올 한해 우리들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따뜻하고 풍성해지는 한 해 되길 바란다.
양민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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