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水(생수)는 마실 수 없는 물, 氷菓(빙과)는 과일이란 뜻 아닌가요?”
24일 중국에서 관광차 한국에 온 저우팅(周汀·21) 씨는 한자 안내판의 뜻을 묻자 이렇게 되물었다.
황당한 대답 같지만 중국인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추측이다. 물을 반드시 끓여 먹다시피 하는 중국에서 생수란 ‘끓이지 않은 물’로 통한다. 따라서 중국인이 이를 한국의 생수 개념인 광천수((광,황)泉水·쾅취안수이)로 알아듣기는 쉽지 않다.
빙(氷)자는 수(水)자와 흡사해 과일을 뜻하는 수이궈(水果)로 잘못 읽기 십상이다. 중국인은 아이스크림을 빙치린(빙淇淋)이라고 부른다.
▽엉터리 중국어 안내판=중국인이 자주 들르는 관광지나 공항, 지하철에 가면 이런 표지판이 수두룩하다. 한국의 관문 인천국제공항의 중국어 안내판은 한글을 한자로만 바꾼 게 적지 않다. 종합안내소는 ‘綜合案內所’, 대형수하물은 ‘大型手荷物’, 탑승구는 ‘搭乘口’ 식이다. 이는 각각 ‘機場問詢處’, ‘超重行李’, ‘登機口’로 써야 맞다.
서울지하철도 사정은 비슷하다. 昇降機(승강기)는 ‘電梯’, 自動乘車券發賣機(자동승차권발매기)는 ‘自動수票機’, 弱暖房車(약난방차)는 ‘低溫車上’으로 써야 한다.
▽왜 이럴까=일본인을 위한 한자표기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한자니까 중국인도 쉽게 이해할 것이란 생각은 잘못이다.
중국은 생수처럼 같은 한자라도 뜻이 완전히 다르거나 주차장(停車場)처럼 한자가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인은 낯선 한자 안내판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중국인 관광객 불만의 23∼24%는 관광지 안내판과 관련된 내용이다.
▽간체(簡體)와 번체(繁體) 논란=중국어 표지판 설치 시 논란이 되는 것은 간략하게 줄인 간체와 기존 한자인 번체 중 어느 것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 간체로 쓰면 대만(臺灣) 관광객이, 번체로 쓰면 중국 대륙 관광객이 불만을 터뜨린다.
이렇다 보니 중국어 표지판은 중구난방이다. 인천국제공항은 간체와 번체를 혼용하거나 병기한다. 경복궁 등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고궁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은 간체만 사용한다. 반면 서울지하철공사는 번체만 쓴다. 관광지나 사적지는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처럼 한자 표기가 들쭉날쭉한 것은 통일된 중국어 표기법이 없기 때문이다. 건설교통부의 도로표지규칙 역시 영문만 규정하고 있다.
표지판의 설치 주체가 문화재청, 지방자치단체, 국립공원관리공단, 지하철공사 등 다양한 것도 통일된 표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중화권 관광객 추이와 전망=한국관광공사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간체를 사용하는 중국 대륙 관광객은 71만2000명. 반면 번체를 사용하는 대만(35만9000명), 홍콩(17만1000명), 화교가 많은 동남아(연간 10만 명 안팎) 관광객도 이와 비슷한 규모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 대륙의 관광객은 매년 15%씩 늘고 있다. 특히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上海) 엑스포 등이 예정돼 있어 앞으로 중국 관광객은 급속도로 늘 전망이다. 최근엔 동남아시아의 화교들도 상용한자를 간체로 바꾸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진종화(陳鍾和) 과장은 “현재는 일본인까지 고려해 번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0∼5000달러에 이르는 5∼10년 뒤엔 안내판을 대부분 간체로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