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탐방 ②
1927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布尔塞维克>의 편집터 속으로
창닝구혁명문물진열관(长宁区革命文物陈列馆)
1984년 ‘볼셰비키(布尔塞维克)’ 편집부 터는 상하이시 인민정부에 의해 시(市)급 문화재 보호단위로 지정됐다. 이듬해 1985년 7월 중국 정부는 옛 터 복원과 함께 창닝구 혁명유물 진열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진열관은 창닝구 문화국 간부의 소속이다. 1988년 10월 24일 복구를 거쳐 사회에 개방되었으며 혁명열사유물, 볼셰비키 편집부의 혁명 사료 등을 볼 수 있다. 관내의 전시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실은 볼셰비키 편집부 터 소개 및 중국공산 중앙기관 간행물의 발전 역사를 다룬다. 전시물 중에는 민국 16년(1927년)의 ‘신청년’, ‘볼셰비키’, ‘구시’ 간행물 등이 있다. 취추바이(瞿秋白), 뤄이농(罗亦农), 덩중샤(邓中夏), 왕뤄페이(王若飞), 정차오린(郑超麟)의 사진과 소개 또한 관람할 수 있다. 제2실은 창닝구의 일부 혁명사적지를 소개하고, 제3실은 ‘볼셰비키’ 편집부 거실 모습을 복원하며 관련된 유물을 전시한다. 2008년 3월 편집부 터는 창닝구 애국주의 교육 장소로 공표된 바 있다.
볼셰비키 편집부는 중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7년 국공합작 결렬 이후 당 중앙기관은 우한에서 상하이로 이전한다. 당 중앙위는 그 해 10월 상하이에서 ‘볼셰비키’라는 중앙기관지를 별도로 발간하기로 하고 취추바이를 비롯한 5명으로 편집위원회를 구성했다. 편집장은 리리싼(李立三) 당시 당 중앙선전부장이 맡았다. 1927년 10월 24일, 1호 ‘볼셰비키’가 출판됐다. 초판 때는 주간지로 정했으나 점차 월간, 격월간으로 바뀌어 비정기적일 때까지 3만 자를 유지했다. 매 호당 중앙의 중요 결의와 지시, 문건을 주로 게재하며 혁명과 동질성, 노선, 전략 문제 등을 연구했다. 무장투쟁과 공농 민주정권 수립을 위한 올바른 논리를 선전하기도 했으며, 토지혁명시기의 가장 중요한 혁명 간행물 중 하나였다. ‘불세비키’는 창간부터 1932년 7월 마지막 호까지 총 52회 출간됐다. 그 중 위위엔루(愚园路)터에서 출판된 것은 모두 31회다.
여기에서는 ‘루이에리(路易•艾黎)’라는 뉴질랜드의 사회활동가이자 이 시기 중국 공산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도 비중있게 다룬다. 그는 1932년부터 1937년까지 상하이에 거주했다.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영국 전력공학 사감 피린과 함께 국제마르크스주의 그룹활동에 참가했고, 국내외 정치 정세와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루이에리는 자신의 특별한 신분과 유리한 주거조건을 이용하여, 많은 공산당원과 진보 인사들을 보호했다. 또한 그는 중국인민을 돕고 지원하는 혁명사업을 하기도 했다. 1982년 베이징 시 인민정부는 그에게 명예시민 칭호를 수여했다.
창닝구혁명문물진열관은 그 규모가 매우 협소하다. 당시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잡지를 발행하려고 고군분투 했을 편집자들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52회라는 다소 짧은 간행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아직까지 ‘불세비키’를 기억하고 있다. 진열관에 들어서면 당시 공산당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티게 해준 역사적 사료뿐만 아니라 인물들까지 엿볼 수 있다.
창닝구혁명문물진열관(长宁区革命文物陈列馆)
• 愚园路1376弄 34号
• 매주 일요일 휴무/ 9:00~11:00, 13:00-16:00
• 무료
박진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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