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우리 가족은 동네에 있는 헬스장에 등록했다. 큰 아이 나이가 만 14세를 한 달 앞 둔 시점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어린이 카드로 등록이 가능하다고 해 성인 반값에 등록을 마쳤다. 카드는 기본이 2년인데 나는 혹시나 싶어 1년을 서비스로 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조금 난감해 하는가 싶더니 자기마음대로는 안되니 총경리한테 전화를 해보겠다고 하더니 승낙이 떨어졌다며 1년을 더 연장해 3년짜리 카드를 발급받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기쁜 마음으로 헬스장에 딸린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면서 수영장엔 거의 사람이 없어 너무 편하게 수영을 할 수 있었다.
회원권을 끊고 올해 첫 여름을 맞았다. 겨울 때와는 달리 수영 강습하는 어린이들, 할아버지, 할머니, 중장년층은 물론 청소년까지 수영장이 동네 목욕탕처럼 북적였다. 이번 여름방학엔 수영장 매일 가는 게 목표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수영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해야지 별 수 있으랴. 비좁은 틈을 타고 왔다 갔다 하는데 자꾸 앞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혀 중간중간 피하거나 아예 일어나서 비켜야 하는 상황이 자꾸 발생했다.
분명히 한쪽 방향으로 돌고 있었는데, 자꾸 한 아저씨가 반대로 수영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나니 정말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쪽 방향으로 돌면 부딪히지 않고 계속 돌 수 있는데, 이렇게 역으로 오면 부딪히기 밖에 더하랴. 삼일째 되는 날 나는 결국 내 앞으로 역행해 오는 아저씨한테 한쪽 방향으로 돌라고 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방향을 알려줬다.
‘이젠 제대로 돌겠지…’
왠걸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저씨는 그냥 가던 길 그대로 다시 찍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볼수록 기가 막혔다. 아니 한 방향으로 돌면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모두가 편한데 왜 굳이 너도 불편하고 나도 불편한길을 선택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수영장을 갈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내가 하도 인상을 쓰면서 수영을 하니 큰 아이가 한마디 툭 던진다.
“엄마도 그냥 해요.”
“왓??”
그 말을 듣고 주변을 살피니,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수영만 잘하고 있었다. 앞에 사람이 오던 말던, 가로방향으로 수영을 하던 말던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나만 팔을 휙휙 돌려가며 한 방향으로 돌라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어머, 내가 지금 어디서 인상을 쓴 거지? 수영장 좀 다녔다고 지금 텃새 부린 건가? 나 중국생활 18년차 맞아?’
아들의 한마디에 제정신이 돌아온 나는 그 후로는 큰 불만 없이 수영에 몰입할 수 있었다. 물론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질서는 필수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도 여기만의 질서가 있다.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내가 감히 이래라 저래라 나설 일은 아닌 것이다.
제정신이 들고 나니 가까운 곳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마침 불편사항은 없는지 물어오는 매니저에게 한 방향으로 돌면 조금 더 편할 것 같다는 의견을 아주 살짝 흘려본다.
플러스광고
[관련기사]
전체의견 수 0
Today 핫이슈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