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불모지를 개척하는 데 '시작'은 더욱 의미가 있다. 13억 인구의 중국. 한국 가수에겐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땅이다. 수많은 스타들이 홀로 진출을 모색했으나 대륙 점령이 호락호락할 리 없다. 사회주의 체제 국가인 중국은 정ㆍ관계(政ㆍ官界)와의 연계도 성공적인 진출의 기반이 된다. 이에 정부가 한국 가수의 중국 진출 물꼬를 터주기 위해 직접 나섰다.
4일 오후7시45분(현지시각) 상하이타우타이(上海大舞臺)에서 '2006 한국 대중음악 쇼케이스-필 더 케이팝 인 상하이(Feel the K-POP in Shanghai)'가 개최됐다. 이번 쇼케이스는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고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스타그룹과 동아연출공사,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체 오렌지쇼크가 주관했다.
그간 비ㆍ신화 등 한국 가수의 단독 공연은 열렸지만 한국 가수 12팀이 중국에서 합동 공연을 펼친 건 처음이다. 신화의 전진ㆍ이민우, 토니안, SG워너비, 휘성, 플라이투더스카이, 타이푼, 씨야, V.O.S, 노을의 강균성, 김현철, 하동균 등이 참여했다.
이미 수많은 중국 팬을 확보한 팀은 단연 전진ㆍ이민우, 그룹 H.O.T. 출신 토니안.
오프닝과 엔딩은 전진과 이민우가 각각 장식했다. 전진은 중국 팬들 앞에서 솔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국내에서 이달 발표할 첫 싱글 타이틀곡 '사랑이 오지 않아요'와 수록곡 '컴 백 러프(Come back ruff)'로 발라드와 댄스를 오가며 객석을 달아오르게 했다. 절도와 파워를 갖춘 이민우의 춤사위는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한류 1세대'인 H.O.T 시절 많은 팬을 확보했던 토니안의 인기도 식지 않았다. 팬들은 토니안의 본명인 "안승호!"를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쳐댔다. 응원 도구중 '토니 C.E.O.'(토니안은 TN엔터테인먼트를 운영 중이다)'란 객석의 피켓도 인상적이었다. 토니안은 "국가를 넘어 음악으로 교류해 즐겁다"며 "상하이에서 콘서트를 해보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SG워너비, 휘성, 씨야, 하동균, V.O.S, 강균성, 타이푼은 처음 중국 땅을 밟았다. 특히 휘성은 3개월 간 공부한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발휘해 인지도에 반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히트곡 '안되나요'의 중국어 제목인 '부커이마(허락할 수 없나요)'를 관객에 가르쳐주며 합창을 유도했다.
"H.O.T. 포에버(Foever)"를 외치던 여대생 싸문(20) 씨는 "토니안의 팬"이라며 "H.O.T. 동방신기 등 한국 가수의 음반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X맨'과 '강호동의 연애편지' 등 한국 TV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를 배웠다"고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얘기했다.
또 신화의 팬이라는 여대생 탕천천(20) 씨는 "전진을 제일 좋아한다"며 "7월 신화의 상하이 단독 공연도 봤다. 전진의 솔로 첫 무대를 봐서 너무 행복하다. 그를 보기 위해 망원경도 챙겨왔다"고 했다.
이번 행사의 통역으로 참여한 상하이 푸단(復旦)대학교 법학과 4학년의 박진용 씨는 "공연장에서 꽤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는 중국 팬들이 적지 않아 놀랐다"며 "한국 스타의 인기에 힙입어 한국어 학원이 많이 생겨났다"고 뿌듯해 했다.
그러나 공연 진행상의 아쉬움도 있었다. 대다수 가수들이 한국어로 무대에서 소감을 밝혔지만 중국어 통역이 없어 무대와 객석의 교감이 반감됐다. 노래 가사의 중국어 자막도 일부 곡에 그쳤다. 또 1층 좌석의 팬들이 무대 맨 앞까지 달려나왔으나 통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이 행사는 무료 공연이었지만 일부 티켓이 암표 판매상에 넘어가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됐다. 공연장 주위에는 200여 명의 암표 판매상이 공연 시작 전까지 티켓을 파느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결국 공연장 밖에서 수백 명의 팬들이 입장하지 못한 채 서성였고 객석에는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문화관광부의 박순태 콘텐츠진흥팀장은 "암표상 때문에 객석을 100% 채우지 못해 아쉽다"며 "중국 정부도 한중 문화 교류에 우호적인 만큼 개선점을 함께 찾아가겠다. 음악이 문화적인 측면에서 파급 효과가 커 이런 행사를 정부 예산에 지속적으로 반영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한류를 몸으로 체득했다"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김진규 본부장은 "한국의 신인을 중국에 처음 선보였다는데 의미가 있었다"며 "통역 등 진행상의 부족한 점은 내년엔 보완하겠다. 또 현지 팬들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가수도 중국어 등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전 교육을 하겠다. 감동과 함께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5천여 팬이 참석한 이날 공연은 상하이 둥팡(東方) TV를 통해 독점 녹화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