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안휘성에 갔다 왔다. 상하이에서 한 시간 정도를 떠나자 논과 밭이 가득 가을의 풍요로움을 담고 나의 시야 속으로 팍 들어왔다.
오랜만에 답답한 시내를 벗어나 너른 들판을 보니 절로 마음은 푸근해지고 들판에는 이제 막 가을걷이를 끝냈는지 동그맣게 노적을 쌓은 곳도 있고, 그냥 들판에 볏짚을 흩뿌려 놓은 곳까지 한국의 어느 들판을 보는 것 같아 어찌나 마음이 넉넉해지던지. 아직 채 가을 걷이를 하지 못한 곳엔 볏이삭들이 노오랗게 익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이미 추수를 끝낸 들판에 총총히 서 있는 볏꽁지마저도 가을의 넉넉함을 전하는 듯 마냥 풍요로워보였다.
'자연의 가을은 단지 이렇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넉넉하게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 있구나' 생각하니 새삼 인간사 가을바람에 서 있는 듯한 나의 삶에 생각이 미칠 때쯤, 해는 이미 기울어 희뿌연 그림자만을 너른 들판에 남기고 있었다. 들판의 나무며 집이며 아련한 실루엣으로 차츰 물들어가고, 들판 끝에 있는 어느 집에서가 일찍 켠 등불이 깜빡이기 시작할 때 즈음엔 그만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가을바람 나부끼는 들판을 야경과 함께 바라봐서일까, 갑자기 감상에 젖어버린 나는 미숙하지만 미래에 대한 열정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리라 다짐했던 패기 넘치던 젊은 날이 생각나면서,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가고, 지금 여기서 하염없이 창 밖만 내다보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눈물이 날만큼 슬퍼졌다.
'젊은 날의 나의 꿈과 열정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소망하고 살고 있나'를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해졌다. 지금 나는 그저 `남편 사업 잘되고 아이들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면 좋겠고 이런 소망만 품고 살고 있었구나'라는 새삼스런 자각이 나의 머릿속을 울리고 그저 아무런 소망도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구나라는 상실감이 너무 커서 상하이로 돌아오는 내내 우울해졌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는 정말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젊은 날엔 내 생을 다 바쳐 이루고 싶은 소망도 있었는데… 이젠 아무런 소망도 없이 그저 아줌마로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만 생각하고 살고 있는 현실이 너무 잔인해서 이제라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해보자 마음먹고 지금껏 이것저것 생각해보지만 그 동안 생활에 찌들어 열망조차도 영~ 죽어 버린 것일까? 작은 소망하나를 간직하기 위한 불씨 하나 찾기가 힘들다.
김광석은 '서른즈음에' 벌써 또 하루가 지나가는 것에 대한 짙은 갈망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노래했는데, 마흔을 넘은 나는 이제야, 아직도 헤매이고 있다.
'무얼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지금 무슨 꿈을 간직하고 싶은가'라고 말이다. ▷치바오 아줌마(qiba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