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제(隋文帝)와 독고황후(独孤皇后)
수문제와 독고황후도 역시 1부1처제를 유지했으나 2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수문제가 독고황후 때문에 부득이하게 후궁을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고황후의 이름은 가나(伽罗)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남자의 정조를 주장했으며 정치에도 남다른 수완과 재능을 보여, 수문제에게 많은 조언을 드렸다.
그녀는 수문제로부터 자신 이외에 후궁을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궁녀들이 황제의 옆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엄격하게 단속했다. 그래서, 수문제의 5남5녀 자식은 모두 독고황후의 친자식들이다.
수문제 양견이 수제국을 세우고 황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처가집의 후광이 컸다. 양견은 무천진 군벌 최고의 명문인 선비족 독고신의 딸인 가나와 결혼하게 되면서 북주 황실의 외척으로서 기반을 굳히고 8주국의 하나인 중신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즉 양견과 독고황후 사이에 태어난 딸이 북주 선제(宣帝)의 황후임과 동시에 정제(靜帝)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선제가 죽고 어린 정제가 즉위하자 양견은 반대 세력을 물리치고 어린 황제를 보좌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을 잡았다. 양견의 권력이 갈수록 커져 스스로 황제가 되냐 마냐를 두고 고민하며 망설일 때 독고황후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기 때문에 내릴 수 없다*는 말로 수문제의 결심을 굳히게 했다.
결국 양견은 어린 외손자로부터 황위를 양위(禅让) 받는 형식으로 쉽게 북주를 손안에 넣고 수왕조(581-618)를 세운다.
독고황후는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해 결벽증이 심해 수문제를 꼼짝달싹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여자 관계가 단정치 못한 사람은 미워하고 배척했다.
그녀는 자신이 잠깐 병상에 누운 사이 수문제의 하룻밤 성은을 입은 궁녀 위지녀를 죽여버렸고 태자 양용이 정실 부인을 냉대하고 첩을 총애해 아이까지 낳았다고 태자를 미워했다. 게다가 그녀의 이 같은 간섭은 집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고경이라는 대신이 부인이 죽은 후 첩실로부터 자식을 얻자 독고황후는 그를 겉과 속이 다른,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수문제를 부추겨 결국 그를 파직시키고 만다.
이같이 지독한 결벽증으로 인해 독고황후는 결국 태자 양용을 폐하고 교활한 양광을 태자자리에 올려놓음으로써 수나라는 2대에 그 종말을 맞고 마는 것이다.
독고황후가 5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후 무려 36년 동안 아내의 감독 속에 위축돼 있던 문제는 2명의 부인과 1명의 애첩을 두고 노골적으로 후궁에 틀어박혀있었다.
그 중 수문제가 가장 애지중지 사랑한 것은 진나라 공주였던 진부인이었다. 그런데 태자인 양광이 수문제가 병상에 누운 틈을 타 진부인을 범하려 했다.
이제 격노한 수문제는 양광을 폐하고 다시 양용을 태자로 책봉하려 했으나 결국에는 양광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황위에 오른 양광이 바로 수양제다.
수양제 또한 그동안 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미녀를 멀리하고 검소한척 위장하면서 억눌렸던 욕망이 폭발하듯 사치와 낭비, 문란한 생활을 일삼다가 618년에 일어난 쿠데타에서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수나라는 겨우 2대에 걸쳐 37년 존재하다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박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