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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정산 서산 능선에 서면 마을 저 멀리 태호의 수면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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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좀 빨리 온다 싶었더니 지난 몇 주 동안 기온도 낮고 비도 많이 내리는 궂은 날씨가 지속되었다.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왔고 지금은 여기저기 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이런 봄 날씨에는 녹차가 제격이다. 전 세계 차 생산량의 40% 이상을 생산하는 중국에서 녹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다. 종류면에서도 가장 많아 필자의 저서에서 소개한 703종의 명차 중에서 448개가 녹차에 해당한다. 용정차(龙井茶)가 가장 유명하겠지만 오늘의 주인공인 동정벽라춘도 그 유명세는 낮지 않다. 예로부터 향기가 좋고 여린 싹에 솜털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독특한 외관으로 인기가 높다.
[사진=여린 차싹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 봄에 조금만 부지런을 떤다면 직접 차 산지에 가서 푸릇푸릇한 차싹도 보고 차 만드는 과정도 볼 수 있다. 벽라춘이 나오는 곳은 거대한 태호(太湖) 동쪽 쑤저우시(苏州市)에 속하는 동정산(洞庭山)의 서산(西山)과 동산(东山)이다. 이전에는 호수 안의 섬이었지만 지금은 도로로 잘 연결된 서산까지 가려면 상하이에서 차로는 2시간 걸리고, 고속철과 택시를 이용해도 비슷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사진=손으로 일일이 찻잎을 따고서도 다시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차가 나오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서산의 거리 곳곳에서는 솥단지를 걸어놓고 차를 만드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는 거리가 한산한데 이때는 모두 차산에 올라 채엽을 하기 때문이다. 마을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에 접근해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작고 여린 차싹을 따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보인다. 하나 하나 정성 들여 손으로 수확해도 집으로 가져와서는 다시 일일이 골라 내기를 한다(간척, 拣剔). 이제 300℃ 이상으로 달궈진 솥에서 숙련된 기술자에 의해 살청(杀青) 공정부터 본격적인 공정이 시작된다.
[사진=벽라춘을 만드는 모든 공정은 솥 안에서 시작하고 끝맺는다.]
[사진=동정벽라춘 제조 공정에 따른 차엽의 변화]
차가 잘 우러나오도록 세포를 부수면서 모양도 만들어가는 비비기 공정도 열기가 많이 남아 있는 뜨거운 솥에서 계속 진행한다(열유성형, 热揉成型). 온도를 더 낮춰 서서히 건조를 해 가며 양손바닥 사이에 차를 비비면서 꼬불꼬불한 찻잎의 형태도 만들고 차싹 표면을 하얀 솜털로 덮이도록 만들어 준다(차단현호, 搓团显毫). 마지막으로 비교적 낮은 솥온도에서 은근히 건조를 시키면 벽라춘은 완성된다(문화건조, 文火干燥). 살청에서 마지막 건조까지 솥안에서 이루어지며 걸리는 시간은 30분 내외로 아주 짧다. 현장에서 주문하면 본인 눈 앞에서 직접 만든 것을 구매해서 가져갈 수도 있다.
[사진=하얀 솜털이 가득한 벽라춘 완성품]
4월5일 전후인 청명절(清明节)을 기점으로 중국의 모든 녹차는 가격이 급격히 하락한다. 실속 있는 소비를 하고 싶다면 그 때를 기다려도 좋지만 특유의 향기와 감칠맛, 그리고 두터운 차탕을 경험하고 싶다면3월 중하순에 생산된 벽라춘을 권한다. 500그램 가격은 비싸겠지만 50~100그램 정도를 구매한다면 부담은 크지 않다.
투명한 유리컵을 쓰면 예쁜 찻잎 모양과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뜨거운 물을 먼저 컵에 붓고 그 위에 살포시 차를 올리는 상투법(上投法)으로 하지 않으면 차탕에 솜털이 많아져 마시기 불편하니 조심해야 한다. 다시 물을 보충할 때에도 벽면을 따라 조심스레 붓는다.
[사진=우리는 방법을 신경쓰지 않으면 혼탁한 차탕에 곤란할 수도 있다.]
부드러운 맛을 원한다면 물 온도를 85℃ 정도로 낮추어도 좋지만 품질 좋은 차라면 끓는 물을 겁낼 필요는 없다. 상하이의 수돗물보다는 농부산천 등 경도가 낮은 생수를 쓰는 것이 좋다. 향기로운 벽라춘을 마시며 기나긴 겨울을 잘 이겨낸 스스로를 토닥여 주면 어떨까?
(茶쟁이 진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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