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더군다나 사춘기 시절을 보내는 자녀가 있는 부모는 인생을 달관(?)하는 경지에 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세대가 자라날 때 겪지 않았던 것을 이 아이들은 힘들게 겪어나가야 하니 부모인 나도 진땀을 빼는 것이고, 아이는 아이대로 혼돈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문화권인 중국에서 사춘기를 보내는 것이기에 그런대로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동양이건, 서양이건 아이들이 겪어나가야 되는 문제는 거의 엇비슷할 것이다.
이 나라 저 나라 옮겨 다니면서 살았기에 때로는 주변의 부러움도 샀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가보다.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있는 것이다. 이것 저것 챙겨가며 아이들을 키워왔다고는 하지만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았는지 모른다. 어느 틈에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스스로에게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오지 않았냐고 위로하지만 나의 좁은 시야가 나를 가두고 아이들을 억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중국 현지 학교에 다니면서 중국 친구들과 아주 잘 어울려 지냈다. 어쩌면 거의 중국 아이들처럼 현지화가 되었던 것이다. 언어는 물론이요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등 많은 부분이 중국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국 학교 친구들도 우리 아이가 한국 아이라는 것을 잊고 아주 흉허물 없이 지낸 것 같았다. 나름대로 잘 적응 해 주어서 고마웠고, 중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아주 잘 융화 되어서 중국 현지 학교에 보내길 잘 했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한국 친구들과 만나고 사귀면서 그들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했다. 어려서는 그런대로 잘 지냈는데, 자기 정체성이 정립되어가는 시점에서 혼란을 겪는 것 같았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규명해 가야하고, 사춘기를 보내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많이 고민하였다. 고마운 것은 그런 심리적인 문제가 일어날 때 마다 이 엄마를 찾아주었고 같이 고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체성의 위기는 남이 나한테 기대하는 것과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때 생긴다고한다. 자신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긴다가나, 자기 자신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안 보고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굉장한 충격이 된다. 그 경험이 반복되면 쉽게 좌절하고 그것이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속해 있는 문화권이 성숙해져야 우리 아이들의 문화적 정체성도 확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국땅에서 커가는 우리의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들을 접하게 된다. 여러 문화 안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면, `자기'를 확실하게 알게 되고, 보다 큰 그릇의 아이로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엄마로 더욱 발돋움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한가?
진선정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