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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과 ‘게이샤의 추억’이 좌절한 이유

[2006-03-13, 06:00:06] 상하이저널
한국과 중국에서 두 영화가 실패를 했다. 한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또 한 영화는 상영 자체에 실패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실패 이유가 비슷하다. 민족주의 때문이다. 이 영화들은 한국과 중국에서 ‘반일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응징’ 당했다.일제강점기 조선의 여류비행사였던 박경원의 삶을 그린 영화 ‘청연’이 흥행에 참패했다는 소식은 조금 씁쓸했다. 12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고스란히 ‘까먹고’ 소리소문도 없이 막을 내렸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제국주의 치어리더’에 가려진 이 영화의 비극이 주인공 박경원의 운명만큼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친일’을 통해 자신의 비행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박경원의 실제 삶은 ‘미화’할 가치조차 없겠지만 영화가 과연 ‘친일’을 미화하고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제국주의 치어리더’에 가려진 ‘청연’의 비극

한 가지 분명한 ‘혐의’는 온라인에서 먼저 불거진 영화 ‘청연’의 친일 논란과 그에 대한 수많은 네티즌들의 댓글이 민족주의적 정서로 충만해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청연’의 추락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질이라기 보다는 관객을 감정적으로 선동한 ‘반일 민족주의’에 있다. 무릇 민족주의가 집단적인 힘을 발휘할 때는 그 위력이 엄청난 법이다.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두 여배우 장쯔이와 공리가 출연한 영화 ‘게이샤의 추억’은 심지어 중국내 상영불가 처분을 받았다. 지난 2월 초 중국 광전총국(廣電總局)은 이 영화에 대해 최종적으로 상영불가 처분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알려진 이유로는 이 영화가 ‘반일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가 중국을 혐오하는 내용을 담았다거나 중국정부를 비방하는 내용이 아닌데도 ‘상영불가’ 처분을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중국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망할 년’ 장쯔이, 좌절된 ‘게이샤의 추억’

그런데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청연’을 추락시켰던 이유보다 더 조잡하고 유치하다. 이른바 중국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 장쯔이의 ‘신성한’ 몸 위로 ‘더러운’ 일본인이 ‘올라탔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마자 영화를 보기도 전에 중국 인터넷에서는 ‘망할 년’ 장쯔이에 대한 욕과 비방이 난무했고 다시 한번 반일 결사 항전의 구호들이 나부꼈다. 중국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장쯔이가 일본 기생 ‘게이샤’ 역할을 맡아 일본 남성에게 몸을 허락하는 장면은 수많은 중국인들, 특히 중국 남성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치욕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때문에 관계당국은 이 영화가 상영되고 난 뒤 자칫 다시 한번 반일 열기가 고조될 것을 두려워 해 ‘고심 끝에’ 상영금지 처분을 내렸다는 후문(!)이다.‘게이샤의 추억’이 상영금지가 된 이유가 과연 반일 여론이라는 후폭풍을 두려워 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 여배우가 일본 기생으로 나오는 것에 자존심이 크게 다친 것인지, 그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장쯔이가 일본 기생으로 주연한 이 영화는 어쨌든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서에 상처를 입혔다는 점이다.

“어떻게 일본 놈과 섹스를 할 수 있어!”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보’는 ‘게이샤의 추억’에 대해 중국인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두고 한국 배우 장동건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던 쳔카이거 감독의 영화 ‘무극’에서 역시 중국인인 홍콩 여배우 장파이쯔가 일본인과 정사신을 벌이는 장면에는 왜 아무도 수치감을 느끼지 않았는지 되묻고 있다. 대륙의 과장되고 왜곡된 민족주의 정서를 비판한 것이다. 옳은 지적이기는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점이라면 장쯔이라는 배우가 중국인들에게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에 대한 고려일 것이다. 홍콩 배우 장파이쯔에 비해 장쯔이는 전 중국인의 우상이자 대외적 자존심의 상징이다. 때문에 그녀의 게이샤 역할은 중국의 뭇 ‘애국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일본 놈과 섹스를 할 수 있느냐”는 성난 중국 네티즌들의 질타 속에는 영화와 현실에 대한 이성적인 구분이 이미 상실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청연’의 추락과 ‘게이샤의 추억’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레 민족주의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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